[편집자 주]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일부 의혹은 근거가 빈약한데도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취재를 통해 의혹을 규명하기보다 근거없는 의혹을 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닷컴은 제기된 여러 의혹들 가운데 명확하게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확인을 해서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규명해보고자 한다.

[의혹③] '한나라당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데 최순실씨 입김이 작용했다'

'국정 농단 사태'의 장본인 최순실씨가 지난 2012년 한나라당이 당명(黨名)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데도 개입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당명 변경 당시에도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이제 보니 무속 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최씨 입김이 작용한 탓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은 '최순실 사태'가 벌어진 뒤 인터넷이나 SNS에서 떠도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언론에도 조금씩 거론되더니, 급기야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의혹 제기에 가세했다. 김 전 지사는 지난 13일 "국정 농단 조사위원회에서 당명 개정 과정 등 (최씨가) 창당 과정에 참여했다는 의혹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 새누리당 당명 변경에 최순실씨가 개입했을까.


우선 김문수 지사에게 "어떤 단서를 가지고 그런 의혹을 제기했느냐"고 물었다. 김 지사는 "단서나 근거는 없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 풍문과 언론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길래, 최씨의 국정 농단 실태를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건 2012년 2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였다. 당시 비대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당시 비대위에 참석했던 새누리당 비박계 한 의원은 "당명 변경은 비대위에 홍보기획본부장으로 영입된 A씨가 공모(公募)를 한 뒤 비대위에서 충분히 논의해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때 최씨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최씨 등) 외부의 입김이 (당명 변경에) 작용할 수 있다고 의심할 단서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새누리당이라는 당명에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지적이 당시에도 있었는데, 그건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보는 한 종교 단체와 관련된 것이었다"며 "최근 문제되고 있는 최씨는 무속 신앙과 관련 있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당명 변경을 주도한 이는 박 대통령이 아니라 A씨였다. 최씨가 새누리당 당명 변경에 개입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새누리당 당명 변경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A씨도 조선일보와 통화에서 최씨 개입 의혹을 강력하게 부정했다. "홍보 전문가로서 제 자존심을 걸고 말하는데 최씨를 포함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당명을 선택한 게 전혀 아니다"라는 얘기였다. 그가 "생업에 심대한 지장을 받는다"며 실명(實名)을 쓰지 말 것을 강하게 요구해 익명으로 처리한다.

새누리당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당명 변경은 국민 공모와 비대위 의결을 거쳤다. 국민 공모는 그해 1월 27일부터 29일까지 사흘간 진행됐다. 공모를 통해 당명 후보가 여럿 접수됐다. 이후 전문가 분석과 당내 관계자 의견 수렴을 거쳐 '새누리당' '새희망한국당' '한국민당' 등 3개 후보가 비대위에 상정됐다. 비대위에선 찬반 토론을 거쳐 '새누리당'이 채택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보도자료에서 "새로움의 '새'와 나라의 또 다른 순우리말, 나라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 '누리'가 합쳐진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뜻하는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가장 복수추천이 많았던 이름은 '새누리당'이었다"고 했다.

새누리당 정식 로고


A씨는 이 과정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당내 고위 인사로부터 특정 당명 후보로 결정하라는 지침은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으로 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제안한 사람은 나"라고 했다. A씨는 "비대위에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일부 비대위원들이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최종적으로 새누리당으로 결정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전권(全權)을 가지고 했고 최씨의 개입 이런 건 전혀 없었다. 변화와 혁신을 위해서 새누리당 이름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준석씨의 말도 A씨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준석 전 비대위원은 "당시 나도 새 당명에 응모했다"면서 "나는 '희망누리당'으로 응모했었다"고 말했다. 이 전 비대위원은 "새 당명에는 순우리말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우리말 사전까지 들쳐보며 찾아보았는데, 후보로 할 만한 단어가 나라와 세상을 뜻하는 '누리' '나라' 정도였다"고 말했다.

특히 이준석씨는 "새 당명이 결정되기 전 어떤 모임에서 A씨와 나란히 앉았을 때 내가 '당명은 순우리말인 누리를 넣는 게 어떠냐'고 말했더니, A씨가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며 맞장구친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2012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당명 개정에 참여했던 새누리당 비박계의 다른 의원도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A씨 설명을 듣고 전문가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혹시 A씨가 다른 비대위원들 몰래 외부인사로부터 새로운 당명을 입력받았을 가능성은 없느냐'고 묻자, 이 의원은 "최근 당명 변경에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나와서 A씨에게 다시 물어봤더니 '절대 그런 일 없다'고 하더라"면서 "2012년 이후에도 A씨와 수 차례 함께 일했는데 개성이 남달리 강한 그의 성격상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결정을 내린 건 아닐 듯하다"고 했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꿀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 관계자들과, 당명 개정을 주도했던 A씨의 말을 종합해 보면 2012년 새누리당 당명 변경에 최순실씨가 개입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