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비상기구', 盧와 함께한 87년 부산 국민운동본부 모델
안철수 '정치지도자회의', YS-DJ의 '민추협'과 비슷하나 文보다 비박계에 구애
박원순 '원탁회의', 야3당대표-정치인-사회원로 참여 제안

야권 대선주자들이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리더십을 잃은 채 버티기에 들어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로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1980년대 민주화운동 경험에 터잡은 제안들이지만, 제안자들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대승적으로 뛰어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대회에서 추미애 대표(오른쪽부터), 우상호 원내대표, 문재인 전 대표, 김두관 의원, 김부겸 의원 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비상기구' 또는 '원탁회의'를 제안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책임있는 여야 정치인이 참여하는 '정치지도자회의'를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들에는 '정국수습을 위해서는 초정파적 협의 테이블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협의체에 참여할 범위를 놓고 이견이 있다.

우선 문재인 전 대표는 박 대통령 퇴진을 내걸고 있는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비상기구'를 구상하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 지역까지 함께 하는 비상기구를 통해 머리를 맞대고 퇴진운동의 전 국민적 확산을 논의하고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당시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가 연상되는 설명이다.

당시 국본은 야당인 통일민주당과 재야 단체를 연합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을 주축으로 시민사회단체 및 종교계, 학생운동조직이 광범위하게 연합해 결성한 조직으로, 구심체 역할을 했다. 1987년 당시 국본은 지역별로도 조직을 구성했는데, 당시 국본 부산본부의 상임집행위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고 문재인 전 대표는 상임집행위원이었다. 문 전 대표가 "지역까지 함께 하는 비상기구"라고 특별히 강조한 이유도 이같은 개인적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7일 제안했던 비상시국 원탁회의도 문 전 대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박 시장은 비상시국 원탁회의 참여 범위로 야3당 대표와 주요 정치인, 사회원로를 꼽고 있다. 이 때문에 박 시장은 문 전 대표 기자회견 후 환영 성명을 내고 "국민에 대한 무책임으로 버티기에 나선 대통령에 맞서기 위해서는 모든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며 "당이 당론을 변경해 대통령 퇴진투쟁에 나서기로 했고 문재인 전 대표 역시 오늘 회견을 통해 대통령 퇴진투쟁에 나서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다만 시민사회단체가 문 전 대표와 박 시장의 제안을 수용해야한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박 시장이 비상시국 원탁회의를 제안한 것이 지난 7일로 열흘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가시적 성과가 없다. 게다가 지난 14일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청와대 단독영수회담 추진은 시민사회의 정치권에 대한 신뢰를 다시 갉아먹었다.

안철수 전 대표와 국민의당은 시민사회단체를 포괄하는 조직 구성에는 부정적이다. 대신 여야 정치인들이 중심이 된 협의체를 구상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8일 여야를 뛰어넘어 현 시국을 수습하기 위한 정치지도자회의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16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여야의 책임있는 정치인들이 만나 정국 수습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며 "언제 어디서나 만나겠다"고 설명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천정배 전 대표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3차 집회에서 참가자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안 전 대표가 구상 중인 정치지도자회의 참가 범위는 '여야의 책임있는 정치인'이다. 문재인 전 대표에게도 문호가 열려있다. 이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화운동 공동대응을 위해 만들었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을 떠오르게 하는 제안이다. 민추협은 1984년 설립됐고 1987년 대선 직전 후보단일화에 실패해 분열할 때까지 야권 내 두 정치인의 공조 체제로 작동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민추협이라는 정치권의 구심이 없었다면 6월 민주화운동 당시 대규모 동원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안 전 대표측은 문재인 전 대표보다는 새누리당의 비박근혜계 정치인들과 더불어민주당 비문계 의원들과의 연대에 더 비중을 두는 분위기다. 안 전 대표는 물밑으로 비박계 전현직 의원들과 접촉을 이어가면서 야권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만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9일 박원순 서울시장, 16일 안희정 충남지사와 손학규 전 의원을 각각 만났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의 제안은 각각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지만 경쟁관계인 정치인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약들을 갖고 있다. 안 전 대표 입장에서는 문 전 대표가 제안한 비상기구의 주도권이 당력과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친소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할 수 있다. 또 문 전 대표 입장에서는 안 전 대표의 '정치지도자회의'에서 여권 비박계 의원과 야권 비주류 인사들에게 포위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제안자들부터 정치적 이해관계를 대승적으로 뛰어넘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