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일부 의혹은 근거가 빈약한데도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취재를 통해 의혹을 규명하기보다 근거없는 의혹을 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닷컴은 제기된 여러 의혹들 가운데 명확하게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확인을 해서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규명해보고자 한다.
[의혹①]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고 말한 것은 최순실씨의 아이디어다.
"통일은 대박이다"는 발언은 박 대통령이 다보스포럼과 독일 드레스덴 간담회에서도 언급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통일 정책 상징어처럼 여겨졌다. 이런 상징어가 최순실씨 아이디어였다면 그야말로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의 꼭두각시였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최순실씨가 사전에 받아보고 일부 수정까지 했다는 것은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의 첫번째 사과 기자회견 때 사실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최순실씨에게)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했던 여러 발언과 연설 중 일부 내용이 '최순실 버전'이 아니냐는 의혹이 다양하게 제기됐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통일 대박' 발언이다. 대통령의 공식 연설에 '대박'이라는 속어 표현이 사용된 게 자연스럽지 않다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급기야 SBS는 13일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이 최순실씨가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의 회의에서 제안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통일 대박' 발언이 최순실씨 아이디어라는 게 의혹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SBS가 근거로 내세운 것은 '검찰이 그렇게 잠정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다른 근거는 없었다.
SBS의 이 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명백한 오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14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일대박'이라는 용어는 2013년 6월 20일 제 16기 민주평통 간부위원 간담회에서 처음 나온 말"이라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간담회 당시 한 참석자가 "신창민 교수가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고 말하자, 박 대통령이 "아,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말했고, 다시 해당 참석자가 "'통일은 대박이다'를 가지고 미국에서 강연을 하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정 대변인은 이어 "2013년 11월 25일 민주평통 운영상임위원과의 대화에서 박 대통령이 '통일에 대해 들은 이야기 중에서 저는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말이 굉장히 와 닿는다. 그런 얘기 들어보셨죠?"라고 말씀하셨다"라고 밝혔다.
정 대변인의 이 설명은 당시 민주평통 간담회와 상임위원과의 대화 대화록에 기록돼 있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변인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용어는 중앙대 경영학부 명예교수이자 당시 민주평통 자문위원인 신창민 교수의 책 '통일은 대박이다'에서 나온 것"이라며 "최순실씨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바로 잡아달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통일 대박'이 최순실씨 아이디어라는 것은 사실인가, 아닌가.
정 대변인의 해명을 확인하기 위해 2013년 6월20일 민주통평 간담회에서 신창민 교수의 책을 소개한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해보았다.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현경대 당시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이었다. 현 전 부의장은 신창민 교수와 대학 동기이다. 현경대씨가 2013년 5월 민주평통 부의장으로 선임되자, 신 교수는 그에게 자신의 책 '통일은 대박이다'를 읽어보라고 주었다고 한다.
현 전 부의장은 "책 내용을 보니 내 생각과 꼭 같더라"고 했다. 현 전 부의장은 "당시 통일 담론의 중요한 주제는 '통일 비용' 문제였다"며 "통일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당장은 안된다는 주장이 많았는데 '통일 대박'론은 그것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현 전 부의장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일은 이 시대 우리의 블루오션"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가 2013년 11월 민주평통 경기지역 자문위원 간담회 강연에서 "통일은 이 시대 우리의 블루오션"이라며 "통일이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말이 있는데 아니다. 통일은 대박이다"고 말한 내용이 경인일보 2013년 11월7일자에 보도됐다.
'통일은 대박이다'는 책을 낸 신창민 교수의 말도 청와대와 현경대 전 부의장의 설명과 부합한다. 신 교수는 2013년 6월 민주평통 간부위원 간담회가 열리고 1개월쯤 지난 뒤 그 회의에 참석했던 민주평통 고위 간부로부터 "통일이 대박이 아니라, 신 교수가 대박이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그 고위 간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으나, 현경대 전 부의장이 확실하다.
신 교수는 "그 말을 듣고 민주평통 회의에서 내 책이 어떻게 언급됐는지는 몰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최소한 내 책을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며 "이후 박 대통령의 대북 관련 발언이나 정책을 보더라도 내 책에 나와 있는 길을 상당히 많이 따라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박 대통령이 내 책 내용을 많이 참고한다는 걸 알고 2013년 9월 수정판을 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의 문을 연다'는 소제목으로 한 세션을 더 넣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연국 대변인의 설명과 현경대 전 부의장의 증언, 신창민 교수의 말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이 나온 것은 신 교수 책과 민주평통 회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통일은 대박이다'는 제목으로 신 교수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은 2012년 7월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공개 회견과 연설에서 언급한 것은 2014년 1월. 따라서 "통일은 대박이다"가 최순실씨의 아이디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