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시인·서점 '위트 앤 시니컬' 대표

우리 서점에는 여태 간판이 없다. 건물을 관리하는 측과 협의가 아직 끝나지 않아 못 만들었다. 개점한 지 벌써 5개월이 되어가는데 간판이 없다는 것이 가게로선 재앙에 가깝다.

게다가 3층에 입주해 있는 상황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우연히 들어오게 되는 손님은커녕, 지나가다 알아보고 들어오는 손님도 없다. 작정하고 찾아오는 이들마저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서 하루에 한두 차례 꼭 혼나고 만다.

심지어 장사가 잘되지 않아서 간판을 달아놓을 돈이 없는 것이냐고 걱정해주는 손님들까지 있을 정도다. 건물주를 원망하기도 하고, 손님들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그럴듯한 간판들을 부러워하며 '달 수 있게 되기만 해봐라. 건물만큼 큰 간판을 달아놓을 테다'와 같은 오기 어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어머니 연배쯤 되는 한 여자 손님이 생각을 바꿔주었다. 그 손님은 개업한 지 두어 달 지났을 한여름 한낮에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 땀으로 범벅이 된 손님의 얼굴을 보고, 또 혼나겠구나 각오를 했다. 어떻게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지 모를 만큼 죄송했다.

그런데 한참만에 시집 서너 권을 골라온 손님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였다. 헤맨 보람이 있다는 것이다. 가게를 찾다가 오랜만에 이대 앞을 구경할 수 있었다는 손님은, 고생해서 고른 시집들이라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했다.

초긍정적인 손님의 밝아진 표정을 보고 안심하게 된 한편, 시를 읽는다는 것, 책을 읽는 일의 보람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표지판이나 간판이 있을 리 만무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고된 길로 찾아나서는 보람이 독서에는 있다. 굳이 서점을 찾아오는 일도 이와 같다. 마음에 꼭 드는 책을 찾고자 기꺼이 고생을 하는 일이 어찌 고되기만 할까.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그 뒤로 마음이 편하다. 우연히 들르는 손님도 좋지만, 간판도 없는 이 가게까지 기어코 찾아오는 손님들이 나는 더 반갑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