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탄둔 무협 영화 3부작: 와호장룡, 영웅, 야연'은 영화와 오케스트라가 만난 특별한 무대였다. 초대형 스크린엔 무협 소설 한 장면 같은 영화가 흐르고, 무대 위에선 서울시향과 한국의 젊은 연주자 지용(피아노)·조진주(바이올린), 중국 차세대 첼리스트 주린(朱琳)이 중국 현대음악 거장 탄둔(59)의 지휘에 맞춰 그가 쓴 협주곡을 연주했다. 붉은색 옷을 입은 두 여인이 쫓고 쫓기며 칼싸움을 하는 장면이 콘서트홀을 집어삼키는가 싶더니 이내 지휘자의 얼굴이 스크린에 떠오르면서 시향과 조진주는 영화 '영웅' 속 검객들의 칼놀림을 웅장한 선율로 그려냈다. 관객들은 스크린과 무대를 번갈아 보며 바이올린과 첼로 같은 서양 악기들로 난세의 영웅들이 치열하게 주고받는 검(劍)의 대화를 귀와 눈으로 감상했다.

2013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탄둔 무협 영화 3부작: 와호장룡, 영웅, 야연’이 실제 공연된 장면. 동양적 영상미를 풍기는 무협 영화와 오케스트라 연주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 호평받았다.

◇'필름&오케스트라' 한국에 상륙하다

영화를 상영하면서 오케스트라가 현장에서 연주하는 음악회는 서구에서 종종 시도됐지만 최근 더욱 다채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향 김유나 공연기획팀장은 "뉴욕필과 LA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홍콩필 등 주요 교향악단들에서 매진을 기록할 만큼 열기가 뜨겁다"면서 "영상에 익숙한 젊은 관객을 공연장으로 유도해 관객층을 넓히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영화뿐 아니다.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같은 다양한 영상에 오케스트라를 접목할 수 있어 더욱 다채롭고 실험적인 클래식 공연들이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아마데우스', 픽사 애니메이션, SF까지… 영상 자원은 무궁무진

다음 달 16일 롯데콘서트홀에는 '아마데우스 라이브'가 무대에 오른다. 밀로시 포르만 감독의 1984년 영화 '아마데우스'를 상영하면서 지휘자 닐 톰슨과 서울튜티앙상블, 서울모테트합창단이 영화 속 음악을 연주하는 '필름&오케스트라' 공연이다. 모차르트 탄생 260주년, 서거 225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아마데우스' 음악 감독을 맡아 모차르트 열풍을 일으켰던 영국 지휘자 네빌 마리너(지난달 2일 별세)를 기리기 위해 지난달 16일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세계 초연됐다.

만년의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이름을 외치며 자살을 시도하는 첫 장면에서 울려 퍼진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 1악장을 시작으로 모차르트 음악이 나올 때마다 연주자들은 현장에서 연주에 나선다. 영화와 같은 호흡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중간부터 시작하거나 갑자기 연주를 멈추는 순간을 보는 묘미도 있다.

내년 5월 6일 예술의전당에선 '픽사 인 콘서트'가 열린다. '인크레더블' '니모를 찾아서' 등 픽사 애니메이션을 편집한 영상과 연주가 조화를 이루는 공연이다. 서울시향은 내년 정기 연주회 프로그램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공상 과학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9월 21일·지휘 최수열)를 올렸다. 미국 워너 브러더스와 영국 사우스뱅크에서 영화와 콘서트 판권을 각각 구입해 국내 초연하는 음악회다. 영화와 함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부터 리게티까지 명곡들을 골고루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