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왜 경기 안 뛰어?"
지난해 정조국(32)의 아들 태하(6)가 아빠에게 말했다. 정조국은 충격을 받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조국의 성적은 FC 서울 소속으로 11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은 게 전부였다.
'태하 아빠'가 늘 이랬던 건 아니다. 정조국은 한국 축구의 미래로 불리는 '수퍼 유망주'였다. 17세 이하, 20세 이하 대표팀 등에서 그는 붙박이 스트라이커였다.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린 2002년에는 대신고 3학년 신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에 훈련생으로 합류해 대스타들과 땀을 흘렸다. 안양 LG(현 FC서울)에서 데뷔한 첫해(2003년) 신인상도 그의 차지였다.
그런데 정조국의 시대는 거기서 끝났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부상이 잦았던 정조국은 팀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2011년 프랑스 리그로 떠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1년 반 만인 2012년 여름 친정팀 서울로 복귀했다. 돌아온 친정에선 주전 자리 잡기도 어려웠다.
올해 초 정조국은 모험을 택했다. 경찰청 시절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몸담았던 서울을 떠나 시민구단 광주FC로 이적한 것이다.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고 있을 때 광주 남기일 감독이 손을 뻗었다. 정조국은 "서울을 떠난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남기일 감독님이 기다리고 믿어주고 기회를 줘 결단을 내리게 됐다"고 했다.
중하위권 시민 구단인 광주는 올해 재정난으로 선수와 사무국 직원 급여를 체불했을 만큼 악재가 쌓인 팀이었다. 하지만 정조국은 이를 악물고 뛰었다. 한때 10억원이 넘었던 연봉은 3억원 수준으로 깎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유치원에서 아빠 자랑을 하고 싶다"는 아들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2016년을 최고의 한 해로 만들었다. 정조국은 이번 시즌 20골을 터뜨리며 전성기 시절 별명(패트리엇미사일)을 되찾았다. 광주 팬들은 그를 '무등산 패트리엇'으로 부른다.
8일 열린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정조국은 득점왕, 베스트11에 뽑힌 데 이어 대망의 MVP에 선정됐다. 정조국은 MVP 투표에서 총 109표 가운데 46표를 얻어 우승팀 서울의 오스마르(39표)를 제치고 프로 무대 데뷔 13년 만에 첫 MVP의 영광을 안았다. 시즌을 8위로 마감한 팀에서 MVP가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정조국의 활약이 이번 시즌 눈에 띄었다는 의미다.
이날 시상식에는 아들 태하군과 탤런트인 아내 김성은(33)씨가 함께했다. MVP 수상자로 자기의 이름이 불리자 정조국은 옆에 앉아 있던 아들 태하에게 뽀뽀를 하고 무대에 올랐다. 정조국은 실감이 나지 않는 듯 "우와" "후유" 등의 소리를 내뱉더니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랬다. "축구 선수 정조국을 가장 좋아하는 정태하 어린이에게 떳떳한 아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상식 내내 무표정하게 자리에 앉아 있던 태하가 아빠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이날 감독상은 전북을 꺾고 역전 우승한 서울의 황선홍 감독에게 돌아갔다. 지난 6월 최용수 감독의 중국행으로 지휘봉을 잡게 된 황 감독은 "잘 따라와 준 선수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