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대학 입학시험을 주관하는 평가 기관에서 각국 담당자를 불러 모았다. 전 세계에서 미국 대학 응시생이 늘다 보니 시험 부정이 점점 다양하고 과감해지기 때문이다. 대리 시험, 나라 간 시차(時差) 커닝, 문제 오려 나오기, 스마트폰 이용 커닝…. 회의장에서 인용된 내용은 대부분 최근 한국 시험장에서 일어난 부정행위였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국인 참석자들 표정이 어떠했을까?
▶6~7년 전까지 일본 도쿄·오사카에는 미국 대학원 입학시험(GRE)이 치러질 때마다 한국 학생이 넘쳤다. 그 몇해 전 한국 학생이 문제를 유출하자 시험 본부에서는 한국 내 시험 횟수를 대폭 줄였다. 졸지에 응시 기회가 줄어든 한국 학생은 일본으로 '시험 원정'을 갈 수밖에 없었다. GRE 응시와 일본 관광을 겸한 여행 상품이 나왔다고 한다.
▶부끄럽게도 한국은 국제적으로 커닝 국가로 통한다. 지난 6월 미국 대입 자격시험(ACT) 문제가 사전 유출되자 시험 당일 한국 내 시험이 전격 취소됐다. 2013년에는 또 다른 미 대입 시험(SAT)이 국내에서 취소됐다. 2010년에는 경찰이 문제 유출 수사에 나섰고, 2007년엔 태국서 시험 본 후 한국에 문제를 넘겨주는 '시간차 커닝'이 적발됐다. 이때 한국 학생 900명 성적이 취소됐다. 로이터통신은 "한국이 시험 부정행위자들 때문에 악명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커닝 왕국 오명 뒤엔 내 자식만 잘되면 상관없다는 비뚤어진 부모가 있다. 여기에 돈에 눈먼 학원이 편승한다. 한 강사는 "문제만 빼주면 사례비 얼마든지 주겠다는 학부모도 있다"고 했다. 이런 학원은 두 달 학원비만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몇해 전부터 펜싱 잘하면 미국 명문대 입학할 수 있다는 말이 돌자 유학 업체들이 '펜싱 교육'에도 나섰다. 미 주간지 타임은 "어떤 대가 치르더라도 하버드·스탠퍼드 같은 명문대 입학 자격을 얻으려는 한국인에겐 상대적으로 적은 돈"이라 했다.
▶조선일보 8일자 A14면에 실린 '와이어에 꽁꽁 묶인 플라스틱 가방' 사진이 오늘날 우리 처지를 보여준다. 미 대입 시험 주관사에서 올가을 한국에 시험지 보낼 때 가방을 굵은 와이어로 묶고 거기에 다시 비밀번호 자물쇠를 잠갔다. 과거에는 시험지를 종이 상자에 넣고 밀봉해 보냈었다. 한국서 문제 유출이 잇따르자 내린 특단책이란다. 다른 나라에는 여전히 종이 박스에 시험지를 담아 보낸다고 한다. 그 자물쇠가 "한국, 너희는 속임수를 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문제와 최순실 국정 농단의 바탕이 왠지 서로 겹쳐 있는 듯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