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이 1조2000억원인 미국 유명 부동산 개발업자 모이시 마나는 몇 달 전 서울 광진구의 컨테이너 쇼핑몰 '커먼그라운드'를 본 뒤 이를 설계한 국내 건축·디자인 회사 얼반테이너(대표 백지원)에 연락했다. 한류 콘텐츠에 관심 많은 그는 지난해 미국 마이애미에 아시안·라틴 무역센터 등이 들어간 12만1400㎡(약 3만6700평) 규모의 복합 쇼핑 단지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그에 적합한 건축 회사를 찾고 있었다. 그는 백 대표에게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독특한 건물을 설계해 복합 단지의 마중물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뉴욕에서 한국 화장품을 소개·판매하는 글로우레시피를 창업한 사라 리와 크리스틴 장은 지난해부터 미국 최대 화장품 유통 판매 업체인 세포라 직원들에게 K뷰티를 바탕으로 한 스킨 케어 트렌드 설명회를 갖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중세안' '멀티기능' 등을 현지에 히트시켰다. 이달 중순에는 세포라팀과 한국을 찾아 K뷰티의 최전선을 경험하게 해줄 계획이다.
국내에서 중위권 대학을 중퇴한 송재선씨가 5년 전 미국 음악 채널인 MTV 뉴욕 본사에 PD로 정식 입사할 수 있었던 데는 한류의 힘이 컸다. K팝을 다루는 기획안을 낸 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송 PD는 "이 기획안으로 만든 프로그램이 MTV월드에서 최고 시청률을 올렸다"고 말했다.
한류가 2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국내외에서 분야별 트렌드를 선도하며 '발로 뛰는' 우리 국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와 맞서며 'K브랜드' 확산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랬던 이들에게 요즘 돌아오는 건 허탈감과 실망감이다. 뉴욕의 차세대 한인 전문가 모임인 고리(GORI) 문동지 대표는 "이곳 언론에도 연이어 '최순실 사건'이 보도되면서 K브랜드가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토로하는 이민자와 학생이 많다"고 전했다.
아시아 문화를 공부하는 미국 친구는 메신저 앱으로 안부를 물어왔다. "미국엔 '공화당은 멍청(stupid party)하고 민주당은 악당(evil party)'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번 대선은 그 반대'라는 농담이 돌아다닌다"더니 "그런데 너희 나라에선 대통령과 그 친구들이 두 역할을 다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농담이라 했지만 말에 가시가 들어 있었다.
'위트 정치'에 능했던 레이건 대통령은 "우리 말에서 가장 무서운(most terrifying) 표현이 바로 '정부에서 나왔다, 도와주려고'(I'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lp)라는 말"이라는 우스개를 남겼다. 우연의 일치인지 '최순실 사태'에 연루된 이들 사이에서도 '도와주려 했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하지만 웃을 수 없었다. 그 결과가 끼리끼리 해먹는 국정 농단이었고, 국가 이미지 훼손을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멍청하면서도 악한 '미꾸라지'들 때문에 어렵게 쌓아올린 K브랜드 이미지가 금 가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