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2020년 도쿄올림픽 때까지 최순실씨의 딸인 승마 선수 정유라(20)씨가 출전하는 마장마술에 186억원을 지원키로 약속했던 것으로 2일 확인됐다. 본지가 이날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대한승마협회 중장기 로드맵'(2015년 10월 작성)에 따르면 "마장마술: 대한승마협회의 회장사인 삼성에 후원 요청" 하는 것으로 돼 있다. 삼성이 대한승마협회의 공식 문서에 지원 주체로 이름을 올린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대한승마협회가 작성한 22페이지짜리 중장기 로드맵의 일부. 정유라씨의 출전 종목인 마장마술은 회장사인 삼성에 후원을 요청한다고 적혀 있다.

지난해 10월 작성된 승마협회의 '중장기 로드맵'은 2020년 도쿄올림픽 유망주를 3개 종목(마장마술·장애물·종합마술)에서 각 4명씩 선발해 2016년 1월 1일부터 2020년 7월 30일까지 독일 전지훈련 캠프를 보낸다는 계획이다. 당시 선수 선발 절차가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다는 항의가 빗발치자 모집은 중단됐다.

승마협회가 정한 두 가지 기준은 '경기력향상위원회가 3배수를 추천'하고, '유능한 외국인 코치가 이 가운데서 종합적인 능력을 고려하여 최종 선발'한다는 것이다. 마장마술 선수인 A씨는 "한국 승마계와 인연이 있는 유명 외국인 코치는 사실상 정유라를 지도한 독일인 코치 한 명뿐"이라며 "이 때문에 승마 대표 선발이 정유라를 뽑기 위한 요식 행위라는 소문이 쫙 돌았다"고 했다. 문건에는 또 전지훈련지로 '독일이 효율적'이라며 이례적으로 밑줄을 그어 놓았다.

삼성이 회장사를 맡고 있는 승마협회가 총 22페이지로 작성한 문건은 삼성 고위층이 회장사를 맡고 있는 승마협회에서 작성했다는 점에서 '셀프 후원 요청서'라는 지적이 나온다. 승마협회장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며 부회장은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 총무이사는 김문수 삼성전자 부장, 이사는 박천호 삼성전자 컨설턴트가 맡고 있다. 한 승마계 인사는 "삼성이 삼성에 후원을 요청하는 것이니 '셀프 요청'인 셈"이라고 했다.

삼성이 1년에 승마협회에 내놓는 찬조금이 13억원가량인데, 이 문건에 삼성이 지원하기로 돼 있는 금액은 4년간 최대 186억원에 달한다. 이런 삼성의 파격적 지원은 결국 최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를 위한 맞춤형 지원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삼성은 "승마협회 회장사로서 올림픽 유망주 육성을 위해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삼성 돈으로 구입한 정유라의 10억 명마 '비타나V' -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타고 훈련한 명마(名馬)‘ 비타나V’. 사진 속 기수는 이 말을 소유했던 스페인의 유명 기수 모르간 바르반콘이다. 삼성전자는 최씨 모녀의 회사인 독일 비덱스포츠에 약 35억원을 지원했는데, 그중 10억원가량을 이 말을 구입하는 데 썼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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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맵은 결국 무산됐지만 삼성은 이와 별개로 승마협회를 거치지 않고 정유라씨의 독일 전지훈련 지원에 나섰다. 삼성이 최순실씨 모녀가 대표로 있는 스포츠 컨설팅 업체 '비덱스포츠'에 35억원을 보낸 것(본지 11월 2일자 A1·3면)이다.

승마협회 관계자는 2일 "삼성이 작년 초 승마협회장을 맡게 된 것은 문체부가 '청와대, VIP(대통령)의 뜻이다. 맡아달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당시 문체부에서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차관급 인사뿐이지 않으냐"며 사실상 김종 전 차관을 지목했다. 다른 관계자는 "승마협회에서 전무를 맡았던 박원호라는 인물이 삼성 측에 'VIP(대통령)의 관심 사항'이라며 '빨리 돈을 송금하라'고 재촉했다"고 전했다. 박원호씨는 정유라씨와 독일에 동행해 승마 훈련과 독일 생활을 도와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본지는 박씨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전화기가 꺼진 상태였다.

승마협회의 중장기 로드맵은 2014년 말부터 승마계에 '800억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당시 승마계에선 "최순실씨가 800억원을 끌어모아 딸을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만들려 한다"는 말이 돌았다. 이번에 본지가 확보한 로드맵은 그 800억 프로젝트를 1년쯤 뒤에 구체화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