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장그래. 공무원 학원계의 성지(聖地) 노량진에 입성한 국어교사 박하나는 별명부터 미생(未生)이다. 수강생 정원 미달로 혹여 폐강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그는 퇴근 후 온기 없는 한밤의 원룸에서 맥주 한 캔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지난 25일 종영한 tvN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배우 박하선(29)은 생계형 아르바이트로 학원계에 발을 들였다가 제 청춘을 날려버린 학원강사 박하나 역을 맡았다. 31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하선은 스스로를 "배우계의 장그래"로 표현했다.
2005년 데뷔해 2011년 MBC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으로 6년 만에 이름을 알렸지만, 처절한 외로움을 느낀 순간도 이때부터다. 혼술과의 인연은 '하이킥' 종영 이후부터 시작됐다. "'하이킥' 찍을 땐 힘들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어요. 무명이던 저를 알린 작품이라 하소연 자체가 배부른 소리였으니까요. 털어놓을 곳이 없다 보니 집으로 숨어들었고, 부모님이 계셔서 방으로 숨어들었죠. 그때부터 홀짝홀짝 술로 마음을 달랬어요."
'하이킥' 이후 차기작에선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영화·드라마 가릴 것 없이 정극(正劇)에선 사랑받지 못했다. 출연을 결정했던 작품이 엎어지는 불행이 겹치며 공백 기간은 2년으로 길어졌다. 박하선은 "대중에게 선택받지 못했던 시간이 '혼술남녀'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극(劇) 초반에 만나는 사람마다 굽실거리며 허리 숙이는 장면이 많았어요. 배우도 결국 누군가로부터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이란 점에서 을(乙)이에요." 직장인의 애환을 '혼술' '혼밥' 같은 트렌드로 버무려내 2030세대의 공감을 받으면서 '월요병 치료제'라는 별명도 얻었다.
소주 1병이던 주량은 2병까지 늘었다. "맨정신으로 하기 어려운 장면이 많아서"라며 웃는다. 아이돌춤, 살풀이, 승무 등 자신의 춤 실력을 벗어나는 장면이 많았던 탓이다. 주량이 늘고 음주도 잦아지다 보니 담당 PD가 '금주령'을 내리기도 했다.
아쉬움은 없을까. "밤만 되면 배우들 단톡방에 저마다 혼술하고 있는 사진이 올라와요. 같이 술 한잔 하고 싶어도 스케줄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혼술'이 되는 거죠. 더 망가지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시즌2에서 풀면 됩니다." 서운하고 간절한 표정 뒤로 술 한잔이 생각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