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호 사회정책부 차장

온갖 정책 이슈가 '최순실 블랙홀'로 빨려드는 와중에 국회가 모처럼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여야 의원 50여 명이 공동 출범시켜 지난 28일 첫 세미나를 연 '국회 비정규직 차별해소 포럼'이다. 여야 입장이 뒤바뀐 것 아니냐고 착각할 정도로 의외 발언이 줄을 이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기업 책임론을 부각했다. "기업이 이윤 추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정규직을 뽑아 혹사시킨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 대한민국은 21세기 선진 국가로 도약할 수 없다"고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기도 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아무리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해도 좋은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며 기업 사정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여당은 기업 편, 야당은 노조 편'이라는 고정관념은 비정규직 문제 앞에서 허물어졌다.

1923만 명(올 3월 현재) 전국 임금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소득이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된다는 사실은 이제 모르는 국민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여다볼 대목이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올해 상위와 하위 10%의 임금 격차는 2013년 5배에서 5.63배로 커졌다. 최근 4년 연속 하위 10%가 월 80만원에 묶인 반면 상위 10%는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 승급 효과가 더해지면서 매년 4%씩 임금이 인상됐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14년 뒤엔 임금 격차가 10배로 커진다. '임금 양극화' 뇌관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형국이다.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 22일째인 18일 오후 서울역에서 철도노조원들이 집회를 열고 코레일에 대체인력 투입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키워드 정보] 비정규직이란?]

30일 현재 34일째를 기록하며 연일 파업 신기록을 써내는 철도노조 파업은 이런 점에서 불편하다. 코레일은 파업 중인 7327명 철도노조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현재 5000여 명의 대체인력을 투입해 철도, 지하철을 운행하고 있다. 여기엔 한 달씩 계약을 연장하는 비정규직 1200여 명이 포함돼 있다. 대체인력 제도는 합법적인 파업 대응책이다. 공익사업장 파업에 따른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2008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됐다.

그런데 상위 10% 기득권 노조가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일자리를 호구지책으로 구한 비정규직을 탄압하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평균 연봉 6700만원(2015년 기준)인 철도노조원들이 그들의 절반가량 버는 비정규직 대체인력을 '파업 파괴자'로 규정하고 '일터에서 나가라'고 윽박지른다. "대체인력이 파업권을 봉쇄한다"는 이유로 대체인력의 숙련도 개선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대체인력이 업무에 익숙해지면 철도 운행 안전성이 높아져 자신들의 파업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사원들에게 개방된 구내식당 정문에 '파업 파괴 대체인력은 이용할 수 없다'는 문구도 내걸렸다.

코레일에 따르면 대체인력의 90% 이상은 취업 준비생들이다. 20~30대 젊은 층과 퇴직자까지 다양하다. 언제 계약이 끝날지 몰라도 그들에겐 단비 같은 일자리가 아닐 수 없다.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을 공격하는 기득권 노조를 보면 배부른 노동자가 악덕 자본가로 탈바꿈한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 비정규직의 '일할 권리'도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만큼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