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딸아이 저녁을 차려줬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삼겹살도 있고 두부도 있고 콩나물도 있었다. 삼겹살 굽자니 너무 거해질 것 같고 콩나물로 뭘 해볼까 하니 밥 먹는 시각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았다. 두부를 프라이팬에 지져 반찬으로 먹으면 딱인데 그때 참치캔이 눈에 들어왔다. 오호, 참치샐러드!
참치샐러드처럼 만들기 쉬우면서 그럴듯한 반찬도 드물다. 양파 조금, 당근 그보다 더 조금, 오이 그보다 더더 조금 잘게 썰고 참치 기름기 뺀 다음 한데 버무려 마요네즈 듬뿍 뿌리고 휘휘 젓는다. 소금과 후추 조금 넣어 간을 하면 끝이다. 아침에는 참치샐러드 만들어 크래커나 작게 잘라 구운 식빵 위에 얹어 먹어도 훌륭한 한 끼가 된다. 참치샐러드에 잘 어울리는 쌈채소가 깻잎이다. 깻잎 특유의 향이 참치샐러드의 짭짤한 맛과 잘 어울린다. "밥 좀 더 먹어" 하며 아이 밥공기에 밥 반 주걱 퍼주니 아이가 경기를 일으키며 "안 먹어, 안 먹어요. 배부르단 말이에요!" 했다.
우리 집 밥공기는 좀 과장해서 멸치 담는 반찬 그릇보다 조금 더 크다. 아이는 그 공기로 3분의 2 정도 먹고, 아내는 2분의 1 정도 먹는다. 주걱도 덩달아 작아져 숟가락 두 배 크기밖에 안 된다. 쌀은 주식(主食)의 지위를 잃었고 주걱은 놀부 마누라 마음을 알 수 없는 크기가 됐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란 말은 '오시일반(五匙一飯)'으로 바꿔야 할 지경이다.
최근 '우리 음식의 언어'라는 책을 읽었다. 그 한 쪽에 1900년대 초 한국인의 밥상 사진이 있었다. 상투 틀고 얼굴이 검게 그을린 남자가 밥상을 마주한 사진이다. 밥그릇은 지금 설렁탕 그릇만 하고 국그릇은 샐러드 볼(bowl)만 했다. 아이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며 "이럴 때가 있었다"고 하니 아이가 말했다. "헐, 대박! 근데 이 아저씨는 왜 이렇게 빼빼 말랐어요? 저더러 밥 너무 많이 먹으면 살찐다고 하시더니!" 그때까지 한국인 밥상엔 단백질이 거의 없었고 맨 나물과 밥뿐이었으며, 그래서 '한국인은 밥심'이란 말이 생겨났고 그것은 일종의 자기 최면이라고 설명할 때쯤, 아이는 흥미를 잃고 딴청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