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의 정신으로 독특한 세계관 반영해
꿈과 열정의 이야기? NO! 판타지적 감동 거부한다
"느려도 괜찮아" 성공 아닌 '성장'이 목표인 삶 그려낸다

주인공 만복은 선천적 멀미증후군 덕분에 매일 왕복 4시간을 걸어서 등하교 하는 여고생이다.

‘걷기왕’은 독립영화의 정신이 물씬 풍기는 성장영화다. 심은경의 담백한 연기와 안재홍의 내레이션이 영화의 소수자적인 정서와 잘 어울린다. 영화는 여느 청춘물들과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이는 백승화 감독의 독특한 세계관이 반영된 결과다. 감독의 전작은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인천의 인디 음악 밴드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주류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난 룸펜 예술가들의 습성을 통해 독특한 삶의 철학을 일깨운다.

◆ 꿈이라니, 먹는 건가

강화도에 사는 만복이(심은경)는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지독한 멀미로 왕복 4시간 거리를 걸어서 통학한다는 것. ‘꿈과 열정, 가난을 이긴 성공의 비결’이라는 자기 계발서에 푹 빠진 담임 선생에 의해 만복이는 경보 훈련을 시작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오래 걷는 것과 빨리 걷는 것은 다르며,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강한 승부욕이 있어야 한다. 촉망받는 마라톤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종목을 바꾼 선배 남수미가 보기에 만복이는 한심한 후배다.

딱히 틀린 생각도 아니다. 만복이 육상부에 온 것은 꿈과 열정 때문이 아니다. 다들 뭔가 하고 있는데 나만 가만히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꿈이 뭐냐는 선생의 질문에 ‘여고괴담’의 우등생이 “그냥 서울대를 가는 것”이라 대답해 뜨악했다면, ‘걷기왕’의 우등생은 “공무원이 되어, 칼 퇴근을 하는 것”이라 답해 더 큰 뜨악함을 안긴다. 꿈과 열정이라니, 오글거린다. ‘타이타닉’주제곡을 리코더로 부는 것 만큼이나.

선천적 멀미증후군 무기력한 만복에게 담임 선생님은 “중요한 건 꿈을 향한 열정과 간절함이야”라며 꿈과 열정마저 강요한다.

영화는 만복이가 첫 대회에 나가 좌절하고 우여곡절 끝에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보는 일종의 은유다. ‘빨리 달리기’가 아닌 ‘빨리 걷기’를 겨루는 경보에서 중요한 것은 완급의 조절과 욕망의 자제다. 경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뛰고 싶은 욕망을 참는 것”이라는 수미의 말은 이를 가리킨다. 만복의 결승전 상황도 조급함으로 인한 페이스 조절 실패로 빚어진 일들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자기 페이스를 잘 조절하여 마지막에 승리하는 사람이 되자’인 것은 아니다.

◆ ‘노오력’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다

영화는 아예 승리를 향한 서사의 틀에서 벗어나 있으며, 승리는 못하더라도 완주를 하는데 가치가 있다는 스포츠 정신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다. 그 점이 일본 청춘영화들과 다른 지점이다. ‘훌라 걸스’ ‘스윙걸스’ ‘린다 린다 린다’ 등 일본 청춘영화에서 소녀들은 공부의 틀에서 벗어나 특별한 예체능의 과제를 완수함으로써 성취의 쾌감과 자기만족을 얻는다. 하지만 ‘걷기왕’은 이런 종류의 판타지적 감동을 거부한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던 만복은 경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반드시 승리하라고 말하던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도 위선이 아닐까. 왜 그렇게 죽을 만큼 ‘노오력’해야 할까. 혹시 ‘미련한 짓’은 아닐까. 마지막에 만복은 자신을 ‘방기’한다. 자기 계발서에서 ‘방기’는 한심하게 취급하겠지만, ‘놓아둠’ 혹은 ‘렛잇비(Let it be)'가 그리 나쁜 짓일까.

2003년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성공 이데올로기인 ‘프로가 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아마추어(애호가)’의 삶을 택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후 십 여 년이 지나는 동안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더욱 깊어지고, 성공을 위한 이데올로기는 이제 생존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되어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촘촘한 그물이 되었다.

만복은 경보를 통해서 새롭게 자신의 꿈을 찾아 가고, 자신만의 속도로 발걸음을 내딛기로 결심한다.

‘걷기왕’은 성공이 아닌 생존을 위해 죽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자기 계발서의 윤리를 거부한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막 살자거나 자포자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만복은 경보를 그만두고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굉장한 성장을 이룬다. 그는 걷기로 진로를 찾는데 실패하지만,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차를 탈 수 없어서 강화도를 벗어날 수 없었던 만복이 걸어서 서울에 가봄으로써, 이제 어디든 걸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기 세계의 확장을 이룬 것이다.

◆ 성공이 아닌 성장이 목표인 삶

통일한국에서 시베리아까지 걸어서 여행하는 그의 백일몽은 진정으로 호방하다. 영화에서 “인생은 정해진 레이스를 달리는 경주가 아니며, 아이들이 넓은 운동장 어디든 갈 수 있게 내버려두어야 된다”는 코치의 말은 멋있게 보이려는 말이었지만, 영화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결말을 통해 보여준다.

만복이와 수미가 이성애 로맨스에 빠지지 않고, 자매애적 결합을 보이는 결말도 좋다. 차멀미와 길치라는 각자의 한계를 보완하며, 두 여성은 함께 걷는 길동무가 된다. 영화 속 내레이션의 주체는 만복이네 소였다. 영화는 스스로 숫소라고 말한 소순이 새끼를 낳는 기적을 보여준다. 사실 소순은 암소였던 것이다. 이는 만복이도 자신의 가능성과 정체성을 다 알지 못함을 암시한다. 혹시 아나. 만복에게 혹은 나에게 자신도 알지 못하는 능력이 숨겨져 있을지.

◆ 황진미는 진단검사의학 전문의로 근무하던 중 2002년에 ‘씨네21’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데뷔했다. 관념적이고 아카데믹한 영화 비평이 대세이던 시절에, 평론가들이 무시하는 대중 영화들을 ‘일상 언어'로 참신하게 소개해 큰 호응을 받았다. 현재 ‘씨네21’ ‘엔터미디어’ 등 여러 매체에 영화와 대중문화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칼럼 타이틀에 대한 아이디어로 ‘황진미의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황진미의 영화로운 삶' ‘황진미의 훅가는 영화'를 제안할만큼 유머와 한방이 있는 글쓰기로, 앞으로 조선비즈의 ‘영화 리뷰'란을 채워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