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회 동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권여선(51)씨는 "매일 규칙적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뭉텅이 시간을 잡아서 창작한다"고 밝혔다. 가령 4박 5일 소설을 쓰곤 2박 3일 쉬는 식이다. 놀 땐 책과 술을 유일한 벗으로 삼는다. 권씨는 수상작 '안녕 주정뱅이'에 대해 "책에 실린 7편의 단편 모두 술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동일한 술꾼 이야기는 아니다"며 "모든 문학의 고유한 주제인 '삶의 괴로움'을 술을 통해 다양하게 보여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수상작을 아우르는 주제는 무엇인가.

"전체 주제를 미리 정하고 여러 단편을 쓰진 않았다. 이 단편들을 쓰던 시기(2013~2015년)를 되돌아보면 사는 일의 괴로움이나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 셈이다. 나는 그런 극단적 고통에 빠진 사람들이 술에 의지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게 됐다."

―1970년대 최인호의 단편 '술꾼' 이후 이처럼 술꾼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다룬 소설집은 처음 본 듯하다. 한국 소설사에서 본격적인 '알코올 문학'의 등장이 아닌가.

"누구는 주류(酒類) 문학이라고 하더라(웃음). 내 개인적 의미로 술은 '시간을 분절(分節)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시간을 살다가 술을 마시면 그 순간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끊어진다. 마치 '작은 죽음'이 지나간 느낌이다. 술은 시간과 시간 사이의 간이역이다."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 권여선씨는 “지금껏 직장 생활한 적 없이 소설만 쓰다 보니 전업 작가란 좋은 직업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죽음 아니면 알코올 중독에 의한 환각(幻覺)에 처한다. 둘 다 모두 현실로부터 배제되는 것이다. 이런 절망 속에서 무엇을 찾고자 했나.

"내 소설은 나락에 빠지는 인물들의 이야기지만 독자들이 그 인물들 속에서 '빛'을 읽어주길 바랐다. 그들이 불쌍하고 가엽기만 한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삶을 견딤으로써 진정으로 희망과 구원을 찾아가는 것을 읽어주길 바랐다."

―수상작에 실린 단편은 다양한 양식을 보여준다. 멜로 드라마, 로드 무비, 인물 약전(略傳) 등등의 서술 양식이다. 수록작 중 멜로 드라마 같은 '봄밤'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기 이혼을 당해 신용 불량자가 된 남자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그와 재혼한 여자도 알코올 중독자로 같은 병원에 수용되면서 전개되는 비극이 섬세하게 다뤄졌다.

"어찌 보면 신파극 같은 내용이라서 감정을 절제하면서 썼고 퇴고할 땐 많이 드러냈다. 독자들이 소설을 읽고서 잠깐이라도 마음이 흔들리는 정서적 자극을 받았으면 했다."

―김수영의 시 '봄밤'을 소설에 인용했고, 제목도 빌렸다. 시를 읽고 나서 소설을 떠올렸나.

"아니다. 내가 쓰던 소설 속에 시가 불쑥 들어왔다. 처음엔 아무 제목도 없이 소설을 쓰다가 막혀서 술을 마신 뒤 우연히 김수영의 시를 읽게 됐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는 첫 시구가 답답한 내 마음에 절실하게 와 닿았다. '술에서 깨어 무거운 몸이여/ 오오 무거운 몸이여'라거나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라는 시행이 새롭게 보였다."

―주량은 얼마나 되나.

"소주 1병 반이 딱 좋다. 지키기 힘들어서 그렇지."

☞권여선

196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장편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상처와 일상의 균열을 해부하는 세계를 그려왔다. 오영수문학상·이상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권씨는 동인문학상 최종심에 2011년과 2013년에 올랐다가 아쉬움을 삼켰지만 올해 세 번째 도전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선정 이유] 

절망·구원을 동시에 노래한 詩 같은 소설

일찍이 파스칼은 인간이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동시에 한갓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이 이 모순을 통째로 감당하기를 바랐다. "인간은 자기가 짐승과 같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천사와 같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며, 이 두 가지를 몰라서도 안 되고, 이 두 가지를 모두 알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는 인간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철저히 밀고 나갔다. 아니 그가 보여준 것은 생각이 아니라 실상이다. 인간의 가장 비천한 모습들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이 없다. 이곳의 모든 인물은, 파산하고 말기 병에 걸리고 중독되고 신용 불량에 처하고, 자학하고 자멸하고 미쳐 버리고, 비웃고 흉보고 욕하고 침 뱉고 싸우고 찢고 할퀴고 저주하고, 뒤엉켜 한꺼번에 굴러떨어진다. 거기에 동정과 연민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안쓰러움도, 부끄러움도, 애씀도 모두 오해와 경멸의 하수구로 투하되어 버린다. 그러나 이 처참한 아수라를 끝끝내 따라다니는 것은 이를 냉철하게 응시하는 명징한 의식이다. 그 투명하고도 이악한 눈총을 통해서 최저 수준의 인간 상황은 도처에서 때마다 반등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인물들은 서로에게 지옥인 채로, 탈옥의 빗장에 함께 매달린다. 그렇게 작가는 절망을 말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해방의 길을 찾도록 부추긴다. 작품은 비극의 난바다를 표랑하는 쪽배이지만 독서는 희망봉을 휘어 돌아가는 어기찬 범선이다. 그러니 "인간을 낚는 어부"가 여기에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인간을 낚는 어부는 바로 인간 안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짐승은 천사의 다른 얼굴임을, 소설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그 점에서 권여선의 소설들은 '무한대 절망의 노래와 한 편의 구원의 시'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과리·김화영·오정희·이승우·구효서·김인환 위원.

[선정 과정]

심사위원 전원 지지 "읽자마자 수상작 직감"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김화영·김인환·오정희·정과리·구효서·이승우)는 지난 15일 경남 통영에서 최종심을 열어 올해의 수상작을 최종 결정했다.

심사위원회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새로 나온 한국 소설 단행본을 놓고 매달 심사독회를 열어 18편을 먼저 골랐고, 이 중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백가흠 '사십사', 윤성희 '베개를 베다', 정용준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조해진 '여름을 지나가다' 5편을 최종심 후보로 선정했다. 이후 최종심에서 각 심사위원이 작품 2편씩을 투표한 결과, 권여선이 모든 심사위원으로부터 표를 받아 최다득표자(6표)가 됐다.

권씨가 완숙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심사위원회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이들의 얘기를 다루면서도 그 몸짓을 냉철하게 응시해, 독자로 하여금 절망의 심연을 객관적으로 성찰케 하는 힘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특히 소설집 첫 번째 수록작 '봄밤'의 경우 "이 한 편만으로 소설의 모든 무게를 감당해내는 느낌"이라는 극찬이 나오기도 했다. 한 심사위원은 "처음 책을 읽자마자 올해의 수상작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고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