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정보] 5년 임기 바뀔때마다… 성장률은 뚝 뚝 뚝 ]

대한민국 50년 경제발전사(史)는 역경과 극복의 역사였다. 어느 한순간 위기 아닌 때가 없었고, 고난이 아닌 때가 없었다. 그때마다 정치·관료·기업 엘리트들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온 나라가 지혜를 나눠 난관을 극복하고 한 단계 더 올라섰다. 역경을 헤쳐가는 강렬한 국가 의지와 문제 해결 능력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50년 성장을 지탱한 국가 발전의 이 공식이 무너졌다. 미증유의 복합 위기가 왔는데도 지금 우리는 무기력하게 거센 파도를 바라만 보고 있다.

두말할 것 없이 지금 우리 경제는 구조적으로 쇠락하고 있다. 저성장이 만성화되고 수출·내수·투자가 동반 위축되며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경쟁력 다한 한계 산업이 빈사(瀕死) 지경이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산업의 피는 수혈되지 않는다. 미래는 더 심각하다. 안으로는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그에 따른 재정 파탄, 밖으론 거대 중국의 부상이라는 태풍이 기다리고 있다. 일부에선 외환위기의 재발 가능성까지 걱정한다. 이미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장기·복합 불황에 들어섰다고 보는 전문가도 많다.

누구나 위기라고 말한다. 경제계뿐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도 심각한 상황을 인정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안다. '한강의 기적'식 성공 방정식의 수명이 끝났는데 낡은 옷을 그대로 입고 개혁·창조·혁신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위기인 것도 알고 원인이 뭔지도 아는데 경제를 위기에서 구하려 행동하는 주체는 아무도 없다. 정부는 근본적 처방을 결단할 능력도 의지도 상실했다. 정부는 얼마 전까지 부실업종 구조조정 대신 부동산 경기 띄우기에 바빴다. 지금 경제팀은 비전 대신 평론가 같은 말만 하고 있다. 관료들은 청문회에 서고 싶지 않다며 책임져야 할 결정을 피한다. 해운산업을 무너뜨리고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표류한 것도 정부의 이런 능력과 의지의 부재가 중요한 원인이다.

국회는 말로만 위기라고 하면서 정작 위기 탈출을 위한 대책은 가로막는다. 야당은 각종 경제활성화 입법을 사사건건 트집 잡았고 시급한 4대 구조개혁을 껍데기로 만들었으며, 반(反)기업 입법으로 기업 활동에 족쇄를 걸려 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위해 경제가 망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몰상식한 노조들은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다. 평균 연봉 1억원의 현대차 노조는 돈 더 달라고 24차례 파업을 벌이면서 3조원의 생산 차질을 빚게 했다. 쌀이 남아도는데도 농민 저항 때문에 연간 3조원을 들여 쌀을 사줘야 하는 등 사방이 '내 몫 더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정치권은 여기에 영합한다. 기업측에서도 2·3세 체제로 접어든 오너들이 기업가 정신을 잃고 중소기업 영역을 넘보며 편하게만 장사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위기의 해법이 무언지도 알고 있다. 가장 절실한 것이 '활력'의 재건이다. 활력을 되찾으려면 부실산업을 구조조정해 좀비를 없애고 노동·공공·금융·교육 인프라를 개혁해 비효율을 제거하고 사회 풍토를 바꿔야 한다. 고령화와 재정파산의 시한폭탄에 어떻게 대비할지 사회적 합의도 시급하다. 여기에 나라의 운명이 달렸다.

위기인 줄도 알고 원인이 뭔지도 알고 해법이 무엇인지도 안다. 그런데도 모두가 손 놓고 주저앉아 서로를 원망만 하고 있다. 이렇게 꽉 막혔을 때 돌파구를 뚫어야 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불통(不通)의 리더십에 갇혔다. 한국 관료의 리더십 전통은 복지부동의 보신주의로 바뀐 지 오래다. 여야 정치권은 정권 잡고 나만 당선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태세다. 모든 주체가 이기주의에 갇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보지 못하고 있다. 내년 1년을 대선 소용돌이로 또 허비하면 정말 경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은 당장 서로 양보해 구조 개혁 한 가지라도 합의하기 바란다. 선순환의 물꼬를 터야 한다.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위기임을 알고 해법까지 아는데 쇠락의 길을 피하지 못한다면 너무도 허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