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서 한국어문회 고문

세종대왕이 1443년 정음(正音)을 완성한 후. 언문청을 열어 원리 연구의 완벽을 기하는 한편, 새 글자의 보급 방법을 강구하느라 3년 만에 공포하니 이것이 훈민정음(한글)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후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등 저술을 통해 한글과 한자의 병기와 혼용, 한글전용 등 자유롭게 사용하는 용례(用例)를 펴보였다. 그런데 그 한글에 의존해 사는 우리 후손의 처사는 온당한 것이었나?

광복 이후 국어 정책은 '한자 사용은 사대주의'라 하여 한자 교육을 배척했고, 한글전용론자를 애국자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우리말에는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고유어와 '모친(母親)' '부친(父親)'과 같은 한자어가 있는데, 한자어가 총어휘의 근 60%나 되는 국어의 구조적인 특성을 무시하는 한글전용정책으로 일관했다. 이에 국민이 한자어를 점점 사용하기가 어렵게 되자 가용(可用) 한자어 수도 감소해 우리말이 모호해지기에 이르렀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文解力)에 관한 국제 비교 연구(2003년)에 의하면, 한국 성인의 문해력은 문서 문해 능력 영역에서 최하위라고 한다.

특히 2005년 1월 27일 자로 제정·공포한 국어기본법은 국어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법의 목적과는 정반대로, 한자어의 한자를 고유문자가 아닌 외국 문자로 규정하고 국어표기문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국어는 한글전용이 전제인 어문규범에 따르도록 했다. 이는 그동안의 한글전용정책을 국어기본법으로 공고화한 것에 불과하다.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지식과 정보의 의미를 신속·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어문(語文)이 참된 국력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창제자가 펴보인 용례까지 무시한 국어기본법으로 한국어의 간명성(簡明性), 응축성(凝縮性), 시각성(視覺性), 변별력(辨別力), 조어력(造語力) 등 걸출한 우수성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한글전용정책은 수준 낮은 문맹이 많았던 1950년대에는 단기적으로 정치·사회적인 면에서 정보의 공유화에 기여한 면이 많았으나, 교육 문화적으로는 국어의 퇴화는 물론이고 전통문화의 단절과 한민족 정체성의 파괴, 국민의 지적 수준 하향화 등의 폐단을 초래했다. 우리말에서 한글전용의 족쇄를 벗기는 일은 우리 세대가 꼭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