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7일(현지 시각) 반세기 넘게 지속된 콜롬비아 내전(內戰) 종식의 기틀을 마련한 후안 마누엘 산토스(65·사진) 콜롬비아 대통령을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산토스 대통령은 지난달 최대 반군 조직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1964년 이후 52년간 계속돼온 내전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노벨위원회는 "산토스 대통령은 현대사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내전 중 하나이자 현재 미주 대륙의 유일한 무장 갈등인 콜롬비아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결연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그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산토스 대통령은 지난 2일 평화협정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돼 사실상 후보에서 제외됐을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최종 수상자가 됐다. 이번 노벨 평화상은 역대 최다(最多)인 376명(개인 228명, 단체 148곳)의 후보가 치열한 경쟁을 치렀다.

이번 노벨 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마지막 단계에서 난관에 부딪힌 평화 협상이 다시 동력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산토스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평화를 위해 일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며 "이 상이 산토스 대통령에게 힘이 돼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산토스 대통령은 "내전으로 고생한 국민과 수백만명의 피해자들에게 이 상을 바친다"며 "우리는 평화에 매우 가까이 다가갔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말했다.

반군 지도자와 악수하는 산토스 - 지난달 26일 열린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평화협정 서명식에서 후안 마누엘 산토스(왼쪽) 대통령과 로드리고 론도뇨(오른쪽) FARC 지도자가 악수하고 있다.

산토스 대통령은 닷새 전만 해도 노벨 평화상 수상이 물 건너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콜롬비아 정부군과 무장 반군이 체결한 평화협정안이 반대 50.2%, 찬성 49.8%로 부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벨위원회는 남미 최악의 좌·우 무장투쟁을 종전(終戰) 문턱까지 이끌고 온 그의 노력과 공로는 협상안 부결로 퇴색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평화 협상 상대방인 FARC 사령관이 수상자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수상자가 아닌 사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며 언급을 피했다. 내전에서 FARC로부터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많은 점을 고려해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콜롬비아 내전은 1964년 쿠바 혁명에 자극받은 콜롬비아 농민군 지도자들이 반군을 결성해 반(反)정부 투쟁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이후 52년간 22만명 이상이 내전으로 숨졌고, 600만명 이상이 살던 곳에서 쫓겨났다.

산토스 대통령은 원래 반군에 대해 강경파였다. 2006~2009년 국방장관 재직 시절 반군에 대한 대대적 군사 작전을 벌여 FARC에 납치됐던 정치인과 인질 등을 구출했다. 2008년에는 이웃 에콰도르 영토에 있는 반군 기지를 폭격해 FARC 지도자 라울 레예스를 제거하기도 했다. 국민 사이에 그의 인기가 치솟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내전을 근본적으로 끝낼 방안에 눈을 돌렸다. 2012년 11월부터 쿠바에서 FARC와 평화 협상을 시작했고 지난달 26일 최종 협상안에 서명했다. BBC는 "매(hawk)에서 비둘기(dove)로 변신했다"고 평가했다.

산토스 대통령은 에두아르도 산토스 몬테호 전 대통령(1938~1942년 재임)과 프란시스코 산토스 칼데론 전 부통령(2002~2010년 재임) 등을 배출한 명문 '산토스가(家)' 출신이다. 미국 캔자스대에서 경제·경영학을 전공했고,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과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가문 소유의 콜롬비아 최대 일간지 '엘 티엠포' 부국장을 지낸 뒤 정계에 진출해 대외무역부 장관과 재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내전 종식과 평화 정착까지는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은 국민투표 부결에도 향후 협상을 계속한다는 입장이지만 수많은 살상을 자행한 반군에게 어떤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인지 등에 대한 논란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노벨위원회 측도 "국민투표의 협상안 부결로 내전이 다시 불붙을 위험이 있다"며 "산토스 대통령과 FARC 지도자 등 협상 당사자들이 전쟁 중단 합의를 계속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피브 위원장은 "산토스 대통령이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적 대화에 국민투표 반대파를 비롯한 모든 협상 당사자를 초대한 점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