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논설고문

이 정부 들어 검찰이 유독 열심히 일한다 싶었지만 이 정도로 열심인지는 몰랐다. 지난 6월 10일 검사와 수사관 240명이 롯데 본사에 들이닥쳐 압수 수색을 벌였다. 이렇게 시작된 수사에 검사 20명을 투입했고 390여 명의 관계자를 720차례 소환 조사했다. 112일 만에 마무리된 수사는 오래전 회사를 떠난 전직 사장 두어 명을 구속한 것이 성과의 전부다. 소환을 앞둔 그룹 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억만 남았다.

검찰은 지난 3년 반 사이 롯데 수사와 같은 대형 수사를 수시로 벌여왔다. 2015년 나랏돈 수천억을 탕진했다며 6개월 동안 석유공사를 팠다. 그러나 구속된 사장은 1심·2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포스코(POSCO)는 8개월, KT&G는 10개월, 농협은 5개월, KT는 6개월 수사가 이어졌다. 결과는 석유공사 수사와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수사의 과녁인 회장·사장은 구속도 못 했거나 대부분 재판을 받고 무죄로 풀려났다. 검찰·경찰의 수사를 받는 것은 환자가 수술대에 오르는 일과 흡사하다. 배를 가르고 오장육부(五臟六腑)를 꺼냈다 넣었다 하는 동안 회사는 숨만 쉴 뿐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다. 검찰의 대형 수사를 받은 대상이 주인 없는 공기업 비슷한 회사였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회사가 망해도 몇 개 망했을 것이다.

나라가 잘되려면 부지런해야 할 곳이 부지런해야 한다. 검찰·경찰 수사, 국세청 세무 사찰은 사회의 곪은 데를 째고 고름을 빼는 일이다. 나라와 사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나라가 일 년 내내 종기를 째고 고름을 짜는 일에만 몰두하면 그 나라 미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기자는 1976년 말부터 4년 가까이 검찰·법원을 취재했다. 그 시절 검찰은 요즘처럼 부지런하지 않았다. 큰 공사(工事)는 일 년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바쁜 곳은 다른 쪽이었다. 현대건설·삼성·LG·대우·선경 같은 회사들이 늘 바빴다. 정부 부처에서도 이런 기업을 뒷바라지하는 상공부·재무부·경제기획원이 야근(夜勤)을 밥 먹듯 했다. 정치적으론 혹독한 시절이었다. 그래도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다행인 걸로 여기던 그때 보통 사람들은 자고 깨면 일자리가 생겨나고 살림이 느는 재미로 시절을 견뎌냈다. 현 대통령 지지자들 상당 부분은 대통령 아버지와 함께 그 시대를 만들고 견디고 뚫고 온 세대(世代)다. 그 세대 눈에는 어쩌다 밤늦은 귀갓(歸家)길에 서초동 네거리를 돌아 테헤란로 접어들었을 때 보이는 '불 밝힌 검찰 청사'와 '불 꺼진 기업 사옥'들이 만드는 풍경이 낯설고 걱정스럽다.

북한 핵은 파국(破局) 직전이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 때 외과(外科) 수술과 같은 폭격으로 북한 핵 시설을 제거하는 방안을 입안(立案)했던 인물이 윌리엄 페리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다. 페리는 그 2년 후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한 비밀 보고서에서 "미국에 도전하는 세력을 억지(抑止)하기 위해선 그들로 하여금 미국의 말은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믿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말 폭탄'은 적을 더 멋대로 날뛰게 만들 뿐이라는 논리다. 그런 미국에서 선제(先制)공격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북핵 위기의 성격이 변한다는 신호다. 북핵이 무력 대결에서 협상 테이블로 이동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북핵 동결(凍結)'과 '미·북 평화협정'의 주고받기식 흥정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미·북 평화협정'에는 '주한 미군 철수론'의 예고편(豫告篇) 같은 시나리오가 담겨 있다. 안보 지반(地盤)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의 바다를 떠도는 한진해운 모습은 '이러다간 일본식 불황에 빠질까 걱정된다'는 말이 호사(豪奢)스러운 탄식처럼 들리게 한다. 일본 정부는 며칠 전 65세 이상 인구가 3461만명으로 전인구의 27.3%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불황의 일본 경제는 이 고령(高齡) 국민을 떠안고 25년을 버텨냈다.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고령 사회로 달려가는 한국 경제에 그럴 힘이 있을까. 다가오는 불황은 일본보다 몇 배 골이 깊고 춥고 긴 불황이 될 터이다. 그런데도 개혁이란 말을 꺼내는 사람도 그런 말에 귀를 여는 사람도 없다.

대통령은 석 달 후 임기 마지막 해에 들어선다. 국회는 여소야대(與小野大)고 내년 7월에는 민주당, 8월에는 새누리당이 차기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 달걀을 쌓아 올린 탑처럼 위태위태한 이 나라 국회의 최대 쟁점은 국민이 듣도 보도 못한 무슨 재단(財團) 의혹과 국가 위기와는 무관한 어느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을 놓고 벌이는 오기 대결이다. 누구도 상황을 순리(順理)로 정돈하자고 나서지 않는다. 여당은 야당이 될 연습에 여념이 없고 야당은 여당이 될 생각을 잊은 듯하다. 국민 홀로 불안하고 불편하다. 국민 마음이 흔들리는 지진(地震)보다 무서운 지진은 없다. 한국 정치는 지금 지진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