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째 국정감사 보이콧을 이어간 새누리당에선 29일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정현 대표와 하루 동반 단식에 나섰다. 이 같은 새누리당의 강경 기류는 친박(親朴)계가 주도하고 있다. 이 대표도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친박계다. 그런데도 전날 의원총회에선 친박계 의원들이 중심이 돼 이 대표의 국감 복귀 제안을 한나절도 안 돼 뒤집었다. 이를 두고 "권력 내부에 무슨 일이 있는 거냐"라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호남 출신 이 대표와 대구·경북(TK) 중심의 친박 주류 분화설까지 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대표의 전날 국감 복귀 제안이 나온 직후만 해도 당내에선 "당연히 청와대와 친박 핵심부와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한 친박계 최고위원은 "이 대표가 조원진 최고위원에게도 발표 30분 전쯤 계획을 알렸을 뿐 사전 조율은 없었다"고 했다. 조 최고위원은 지난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서 친박계의 지원을 받고 1위를 한 핵심 인사다. 친박 인사들이 추후에 확인한 결과로도 이 대표와 청와대 사이에 사전 논의는 없었다고 한다.

새누리당 정진석(왼쪽) 원내대표가 29일 단식 나흘째를 맞이한 이정현 대표를 찾아가 단식 중단을 요청하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뜻을 굽히지 않자 이날 오후 동조 단식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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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 대표는 국감 복귀 문제를 일부 비박(非朴)계 의원들과 상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나경원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이 대표가 며칠 전 자신은 단식을 계속하고 의원들은 국정감사에 임하는 '투 트랙' 투쟁 방안을 얘기하면서 지지를 요청했었다"고 했다. 이 대표가 자신은 단식하되 의원들은 국감에 복귀하는 구상을 단식 초기부터 갖고 있었고, 친박 강경파를 설득하기 위해 비박계 의원들의 지원 사격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대표는 왜 '독자 행동'을 했을까. 이는 대야(對野) 투쟁 수위와 방법에 대한 이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나 친박 주류 모두 기본적으로는 야(野) 3당의 해임건의안 처리를 '대통령 흔들기'로 보는 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 대표 측 관계자는 "'민생 우선'과 '국회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이 대표로선 집권당이 국정을 내팽개친다는 여론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 대표는 자신의 단식과 국회 파행으로 인해 청와대와 당에 쏠릴 정치적 부담도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 대표는 이런 사정 등을 감안해 자체 판단으로 국감 복귀 카드를 꺼낸 것 같다는 게 당 관계자들 이야기다.

반면 친박 주류 측은 "이 대표의 뜻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국감에 복귀할 때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특히 친박계는 이번 사태의 전개 양상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을 촉발할 수 있다고도 보고 있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은 "이번 사태에서 얻는 것 하나 없이 물러서면 당이 대통령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커지면서 여권 전체가 분화에 접어들 수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정국 장악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친박 주류가 이 대표의 '대오 이탈'을 막아섰다는 얘기다.

이 대표와 공동 보조를 맞춰온 정진석 원내대표가 국감 복귀 문제에선 이 대표와 달리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원내대표는 그동안 주변에 "국회 파행을 길게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고민도 토로해왔다. 하지만 청와대의 뜻이 '복귀 연기' 쪽에 있고, 당내 의원들 뜻을 존중해야 하는 원내대표 자리의 성격상 이 대표 뜻과 다른 쪽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내 일각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이 대표와 그를 당대표로 밀어올린 대구·경북(TK)이 중심이 된 친박 주류가 분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TK 지역의 한 의원은 "이 대표가 독자적으로 단식을 결행해 국회 정상화의 퇴로를 막았다는 일부 지적에 부담을 느껴 국감 복귀를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며 "친박 주류와의 갈등으로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 대표도 자신의 제안 후 여권 주류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확인하고는 곧 거기에 보조를 맞추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감 복귀 문제에 대해 청와대는 이날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여권 관계자들은 "야 3당의 공세에 맞서 친박 강경파가 '박 대통령 대(對) 야당'이 아닌 '정 의장 대 새누리당' 대치 구도로 만들려는 측면은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