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사태에 반발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26일 첫날부터 파행했다. 국회는 이날 12개 상임위원회가 58개 정부 기관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실시할 예정이었지만 정상적으로 진행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새누리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5개 상임위는 국감을 시작도 못 했고, 야당이 위원장을 맡은 7개 상임위는 여당 의원들이 불출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여야는 파행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했지만 속으로는 서로 '국감 안 해도 된다' '여당 없이 우리끼리 하면 된다'는 계산이어서 대치가 장기화될 수도 있을 조짐이다.

12개 상임위 모두 파행

새누리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제사법위, 정무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국방위, 안전행정위는 사회권을 가진 위원장이 불참하면서 아예 개회(開會)도 못 했다. 법사위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대법원, 양형위원회 등 6개 기관에 대해 국감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권성동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하면서 오전 11시쯤 야당 의원들도 퇴장했다. 야당 의원들은 오전 11시 30분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은 국감장에 나와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각종 비리 및 외압 행사 의혹,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감찰 활동 관련한 외압 의혹 등을 규명하라"고 촉구한 뒤 해산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조정실과 국무총리비서실을 대상으로 열릴 예정이던 정무위 국감도 야당 의원들이 오전 내내 회의장에서 기다렸지만 새누리당 위원들이 끝내 불참하자 오후 1시 30분 야당 의원마저 철수했다. 정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1987년 개헌으로 국정감사가 재도입된 이후 국감이 전면 보이콧된 전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텅 빈 여당석 -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26일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신상진 위원장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함에 따라 이날 국감은 무산됐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누구?]

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외교통일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산업통상자원위, 보건복지위, 환경노동위, 국토교통위 등 7개 상임위는 일단 개회는 했지만 파행을 면치 못했다. 교육부 등 7개 기관에 대한 교문위 국감은 개회 34분 만에 중단됐다. 나머지 6개 위원회는 야당 단독으로 국감이 진행됐다.

與野 모두, '지지층 회복·결집' 노려

여야가 국회 실종이라는 비난에도 이처럼 강하게 맞서는 데는 나름대로 정치적 실익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거야(巨野)의 독주를 부각시켜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실제 이번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파동과 관련한 대야 투쟁 과정에 김무성 의원 등 비박계가 앞장서는 등 당내 응집력은 커지고 있다. 당 관계자는 "지난번 정세균 의장 개회사 파동 때처럼 이번에도 친박·비박이 하나가 된 모습"이라고 했다. 해임건의안이 국정감사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관한 야당의 의혹 제기에 김을 빼는 효과도 있다.

야당도 이번 사태가 자신들에게 득이 더 많다고 보고 있다. 우선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공조를 통해 호남 등 전통 지지층이 결집하는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더민주 관계자는 "국회 파행이 길어질수록 이 같은 여야 간 대결 전선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고 했다. 사상 초유의 여당 국감 보이콧 사태에 대한 책임이 결국은 여권으로 돌아갈 것이란 계산도 하고 있다. 더민주 관계자는 "여당이 국감을 거부하면 스스로 여당임을 포기하는 게 돼 여론이 등을 돌릴 것이고, 여당이 국감장에 돌아와도 국감장에서 주도권은 야당이 쥘 수밖에 없다"며 "어느 쪽도 실리는 야당에 있다"고 말했다.

여야는 다만 국회 파행이 장기화될수록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식해 적절한 시점과 계기를 찾아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