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화재가 난 고층 아파트에서 자고 있던 다른 주민들의 현관문을 두드려 이웃들을 깨운 주민의 선행이 뒤늦게 알려졌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15층짜리 아파트 12층에 살고 있는 김경태씨는 지난 24일 오전 4시 30분쯤 윗집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 잠이 깼다. 매캐하게 타는 냄새를 맡고 "불이 난 것 같다"고 생각한 김씨는 "사람 살려"라는 비명을 듣고 곧장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13층 현관에서는 이모(21)씨가 소방 호스로 집 안쪽으로 물을 쏘고 있었다. 집 안에는 이씨의 아버지와 두 여동생이 갇혀 있었다. 김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윗집 큰아들이 불을 끄려고 애쓰는 걸 보고 나도 도우려 했지만 이미 불길이 현관 앞까지 번져 있었다"며 "새벽 시간이라 자고 있을 이웃들을 먼저 대피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래층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불이 났음을 알리고 수건에 물을 적셔 건넨 뒤 1층으로 내려가게 했다. 그리고 12층 맞은편 집의 대문을 세게 두드리며 "불이야, 불!"이라고 소리쳤다. 이후 계단을 타고 한 층씩 내려가며 총 23가구의 문을 두드려 불이 났음을 알렸다. 화재 당시 단순한 소란으로 알았던 주민들은 김씨 덕분에 불이 난 것을 알고 긴급 대피했다.

이날 화재로 이씨의 아버지(45)와 10대인 두 여동생 등 3명이 숨지고 주민 17명이 연기를 마시는 등 부상을 당했다. 이씨의 집은 모두 불에 탔고, 위아래 집과 아파트 외벽이 검게 그을렸다. 경찰은 누전에 의한 화재로 보고 정밀 감식을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불이 난 아파트 건물에는 180가구가 살고 있었다"면서 "주민들의 대피가 늦어졌더라면 부상자가 더 늘어날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