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땅에 쓴 오래된 묘지의 관리권과 땅 주인의 토지 소유권 가운데 어떤 게 우선할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2일 이 문제를 놓고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른바 '분묘기지권(墳墓基地權)' 문제다. 분묘기지권은 묘의 관리와 제사를 위해 묘와 주변 토지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동안 대법원은 다른 사람 땅에 묘를 쓴 경우에도 기간이 오래 지났다면 분묘기지권을 인정해줬다.
대법원이 이 문제를 공개변론에 부친 것은 강원도 원주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다. 원모(79)씨는 2011년 "내 땅에 허락도 없이 설치된 분묘 6기를 철거할 수 있게 해달라"며 같은 종중(宗中)인 다른 원모(63)씨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묘 6기 중 5기는 설치된 지 20년이 지났고, 이 기간에 땅 주인(79세 원씨)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묘 5기는 철거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2심도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고 이 사건은 지난 2013년 대법원에 올라왔다. 1·2심 판결은 "땅 주인의 승낙을 받지 않고 묘를 썼더라도 20년간 땅 주인이 문제 삼지 않았다면 분묘기지권을 인정해주라"는 1996년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날 공개 변론에서 땅 주인 원씨 측은 "분묘기지권은 부동산 거래와 개발을 제한해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기존 대법원 판례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화장(火葬) 비율이 79%에 이를 정도로 장례문화가 변했기 때문에 매장(埋葬)이 위주이던 시대에 인정해 온 분묘기지권을 계속 인정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피고 측은 "명절이면 조상의 묘에 성묘하는 비율이 70%에 이르고, 20~30년 후에도 이런 성묘 문화는 지속될 것이라는 응답이 55%에 이른다는 정부의 조사 결과도 있었다"며 "대부분 국민이 여전히 조상의 묘소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분묘기지권은 꼭 필요하다"고 맞섰다. 이들은 "분묘기지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땅 주인들이 묘를 이장하라고 요구하면서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이 발생할 것이 뻔하다"며 "매장 비율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분묘기지권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 논란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도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달라진 시대 상황 등을 충분히 감안해 분묘기지권 문제에 대한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