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

퍼블리 박소령(36) 대표의 명함 뒤편에는 네 글자가 추가로 적혀 있다. '저자 중심'. 그렇다면 퍼블리는 출판사 이름일까. No. 아니라면 박 대표는 작가인가. No. '퍼블리'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는 없었던 기업이다. 충성심 강한 퍼블리 팬의 표현을 빌리면, '술값 대신 콘텐츠에 지갑을 열게 만드는 스타트업'. 인터넷 콘텐츠는 무료여야 한다고 믿는 카피레프트(copyleft) 지상주의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가치 있는 정보를 얻으려면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하는 소신의 젊은 벤처다. 지난해 4월 법인 등록을 마친 퍼블리는 이런 취지의 작명. 공공성의 의미(Public)를 지닌 가치 있는 콘텐츠를 '퍼블리케이션(홍보)'하는, 또 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과 읽는 사람들이 즐겁게 떠들 수 있는 펍(Pub)의 의미다.

하지만 말이야 누가 못하겠는가.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쓰레기의 바다"라고 비판하던 많은 선배가 고급 정보 유료 제공이라며 '지식 큐레이션'의 돛을 달고 나섰다가 좌초를 거듭했다. 대다수 네티즌 독자가 지갑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퍼블리만의 차별성은 뭘까. 내용적으로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경험도 팔겠다는 것,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다수 개인에게서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20일 현재 퍼블리 홈페이지(Publy.co)에는 '진행 중'(What′s on)이라는 깃발 아래 4개 프로젝트가 구애(求愛) 중이다. 그중 마감일이 임박한 프로젝트(23일)는 '시애틀 맥주 축제에서 퍼블리 맥주 파티까지'. 목표액 100만원인데, 이날 현재 190만9000원이 모여 190% 초과 달성이다. 참가 신청자는 6만6000원을 내면 퍼블리가 주최하는 맥주 파티 티켓과, 시애틀 국제 맥주 축제에 관한 디지털 리포트를 받을 수 있다. '드물고(Rare), 찾기 어렵고(Hard to find), 이국적인(Exotic) 크래프트 비어(소규모 양조장 맥주)'를 표방한 이 축제를 시애틀 현지에 살고 있는 김서경씨가 현장 취재하고, 지난해 12.8% 성장했다는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시장을 분석한 리포트다. 디지털 리포트만 원한다면 2만2000원으로도 신청할 수 있다.

박소령〈사진〉대표와 공동 창업자인 3년 후배 김안나 부대표의 명함 뒤편에는 각각‘저자 중심’과‘독자 중심’이라 적혀 있다. 저자와 독자를 양대 축으로“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어른을 위한 지적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퍼블리의 실험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먹고 마시는 프로젝트만 잘되는 건 아닐까. 200만원 모금을 목표로 추석 직전 접수를 시작한 프로젝트 '글로벌 기본소득 실험의 모든 것을 담다'가 그 반박이다. '인공지능 시대와 일자리'를 고민해야 하는 골치 아픈 주제인 데다 1인당 6만8200원이라는 적지 않은 가격이지만, 벌써 35명이 참여해 175만6200원이 모였다. 마감은 아직 59일이나 남은 시점. 퍼블리 프로젝트의 매력이 바로 이 대목이다. 단순히 보고서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보고서의 필자와 값을 치른 개인이 만나 간단한 식사를 하며 질의응답·토론을 나눈다는 것.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다. 콘텐츠뿐만 아니라 경험까지 공유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방식으로 퍼블리는 '칸 국제광고제를 가다'(모금 목표액459% 초과) 등 22개 프로젝트를 이미 끝냈고, '2016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를 가다' 등 15개 프로젝트가 '개봉박두'(Coming Soon) 표지 아래 접수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는 ‘르네상스인’ 인터뷰 시리즈의 2회 주인공이자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의 저자인 제현주씨가 현장을 취재해 '리포트'를 쓴다.

박 대표를 만난 곳은 퍼블리가 입주한 서울 성수동 '카우앤독(Cow&Dog)'. 얼핏 '개' 나 '소'가 먼저 떠오르지만, "함께 일하며(Co-Work) 좋은 일을 한다(Do Good)"는 취지가 숨어 있는 소규모 벤처들의 개방형 공간이다. 퍼블리를 시작한 계기를 물었을 때, 박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 신입생 시절이던 2000년을 떠올렸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책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을 읽고 강한 자극을 받았다는 것. 그는 이 구절을 기억했다. "급변하는 미래 세계에 가장 중요한 직업 두 가지는 전략가와 저널리스트이다. 전략가는 변화하는 세계를 만들어갈 책임이 있고, 저널리스트는 변화하는 세계를 대중에게 쉽고 정확하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

컨설팅 기업 매킨지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 석사를 거쳐 15년이 흐른 지금, 박 대표는 '퍼블리'를 통해 전략가와 저널리스트의 임무를 동시에 수행 중이다. 급변하는 미래를 현명하게 돌파하는 데 도움이 될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프로젝트 저자'들의 전문용어를 대중의 언어로 번역하기. 참,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우선 '독자 박소령'이 읽고 싶고 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여야 한다는 것. 자칫 오만해 보일지 모르지만,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과 의미로서 직업이 되기 위한 그만의 전제다.

다음은 일문 일답.

ㅡ퍼블리를 시작한 계기는. 자신의 소개와 곁들여서.

2005년 학부(서울대 경영학과 2000학번) 졸업 후, 저는 경영전략 컨설팅 회사에서 5년간 일을 했습니다. (맥킨지, T-Plus) 당시 경기가 호황기였고, 주로 B2C 소비재 기업들의 신사업 컨설팅 프로젝트와 사모펀드들의 투자 DD 프로젝트들을 많이 했었고요.

하지만 동시에 저는 대학시절부터 미디어/컨텐츠 산업에 계속 관심이 있어왔고, 특히 intellectual content(신문, 잡지, 책과 같은)에 더 깊은 애정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의 저를 형성하는데 있어 학교의 정규교육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친 것이 제가 읽어왔던 컨텐츠였기 때문이고요, 동시에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미디어의 힘이 교육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토마스 프리드먼의 책,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서문에 나오는 전략가와 저널리스트의 역할에 대한 언급은 지금도 제가 믿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급변하는 미래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 2가지는 전략가와 저널리스트이다. 전략가는 변화하는 세계를 만들어갈 책임이 있고, 저널리스트는 변화하는 세계를 대중들에게 쉽고 정확하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대학원 (하버드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 석사 Class of 2014) 졸업 이후,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미디어/컨텐츠 시장의 기존 조직에서의 기회를 찾기가 어려웠고, 오랜 고민 끝에 2015년 4월 직접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제가 용기를 내어서 창업을 할 수 있게끔 함께 해 준, 공동창업자 김안나님이 있습니다.

김안나님은 학부(연세대 경영학과 2003학번) 졸업 후, 컨설팅 회사(T-Plus)에서 저와 3년간 같이 일을 했습니다. 그 후, 리디북스의 창업멤버로 입사해서 컨텐츠 기획 및 사업 제휴 담당자로 5년간 일을 했고 그 후 이베이에서 전략 업무를 맡았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미디어/컨텐츠 시장의 미래와 이 안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고민을 할 때 discussion partner 역할을 해 주었던 분이 김안나님이고요, 제가 직접 창업을 하겠다고 할 때 이베이를 그만두고 2015년 5월에 합류했습니다. 2006년에 처음 만났으니, 10년만에 다시 함께 일을 하고 있네요.

ㅡ현재의 퍼블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200자로 요약해주신다면.

PUBLY는 한국 사회의 지적 자본이 될 수 있는 B2C "유료" 콘텐츠 시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브랜드, 데이터의 힘으로 새로운 지적 콘텐츠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며, 현재는 선주문 크라우드 펀딩을 사용해서 콘텐츠 생산단계의 B2C 유료화 모델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고, 펀딩종료 후 콘텐츠 판매 채널도 곧 오픈 예정입니다.

ㅡ누가(어떤 세대가, 어떤 젠더가, 어떤 직업군이) 가장 큰 고객인가.

저희는 처음부터 타겟 고객이 저와 김안나님이 제 1번 독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과 같이 (읽는) 콘텐츠에 소비자가 직접 돈을 지불하는 시장(프린트+디지털 둘 다 포함)이 크게 축소된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결제의 의지를 가진 소비자가 누구이며 어떤 니즈와 불만사항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습니다.

저와 김안나님이 2006년에 친해졌던 이유도 '읽는 콘텐츠'가 가진 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리고 둘 다 매우 까다로운 소비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 둘이 만족할 수 있고 읽고 싶은 콘텐츠라면, 다른 사람들도 돈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요.

결론적으로, 20대 후반~40대 초반 (제 나이를 기준으로 +10/-10 연령대)의 Young Professional (유료 지적 콘텐츠를 소비하고자 하는 지력/학력과 결제할 수 있는 경제력을 어느정도 가진) 이 현재의 메인 타겟입니다. 프로젝트마다 약간씩의 편차는 있고요. 남/녀 성별은 다 합치면 5:5 가량이 됩니다만, 역시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ㅡ2015년 4월 시작했다고 들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퍼블리는 당신이 예상했던 지점에 있나. 퍼블리의 현재를 평가한다면. 실패하거나 약점까지 포함해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제가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품어왔다가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미디어/컨텐츠 시장에서 제 시간과 에너지를 100% 쓰고 싶은 방법 중 하나로 창업을 택한 것이기 때문에 작년 4월에 법인 설립을 하면서도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겠다, 라는 뚜렷한 목표와 계획은 없었습니다.

지난 20대 시절 제가 경영학을 배우고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던 시절에 대한 반성을 요즘에 PUBLY를 하면서 많이 하게 되는데요. 당시에 제가 고객 기업들을 상대로 중장기 비전과 미션, 전략과 실행계획을 설계했던 것들이 지금 되돌이켜 보면 얼마나 가치있는 조언이 되었을지 부끄럽기도 합니다. 지금처럼 시장환경이 급변하고 한국과 세계의 시차도 거의 나지 않는 구조 안에서, 조직의 비전과 전략을 말하는 것에 무척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네이버 이해진 의장이 공개연설을 하면서, 비전과 미션을 세우면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세우지 않게 된다, 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 매우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끊임없이 민감하게 촉수를 세우고 상황에 적절하게 적응하고 navigate 해 가면서 성과를 내야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게 요즘 제 생각이고요. (또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1년 반 이전에 1년 반 후에 이만큼 가야되겠다, 라는 예상이 없었기 때문에 비교 평가는 어려울 것 같고요. (물론 김안나님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ㅎㅎ)

현재를 평가한다면, 약간 씨앗을 틔운 것 같긴 합니다. 정량적으로 보자면, 저희는 펀딩금액과 유료고객수 지표를 가장 중요하게 보는데요, 2016년 1월 말 사이트 베타 오픈 이후, 이 지표의 숫자와 성장 기울기를 긍정적으로 판단하고요. 정성적으로 보자면, 어수웅 기자님께서 저희에게 연락을 주신 것 자체가 또 하나의 기쁘고 긍정적 신호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패, 약점이라기 보다는 현 시점에서의 아쉬운 지점을 말씀드리자면, 저희 내부의 상주 개발팀 구성이 조금 늦어지다보니 소비자 입장에서 더 편리하게 사이트를 이용하고 결제를 하고 유료 콘텐츠를 '읽는' 경험을 더 빨리, 더 탁월하게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 저와 김안나님 둘 다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다보니, 발생한 이슈였는데요. 하지만 올해 5월부터 상주 개발팀 구성이 이루어졌고, 제품팀 헤드 (이승국님) 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는 중입니다. 저희 팀은 현재 제품팀과 콘텐츠팀이 5:5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ㅡ술값대신 콘텐츠에 지갑을 열게 만드는 퍼블리, 라는 댓글을 봤다. 축하한다.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던 콘텐츠와, 예상 외로 가장 호응이 적었던 콘텐츠는. 크라우딩 펀딩의 가장 호응 높았던 사례와 예상외로 호응 적었던 사례를 하나씩 예로 들어달라.

펀딩금액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숫자를 기록한 것은 칸 국제광고제 (https://publy.co/project/277/detail) 였습니다. 약 2천만원의 펀딩이 이루어졌고요. 호응이 컸던 이유는, 광고/홍보/마케팅 분야 업계에 종사하는 직장인/학생 분들께 본 프로젝트가 널리 알려졌고, 마침 저자 2분 중 한분이 페이스북 구독자 30만명을 자랑하는 '광고의 모든 것' 페이지의 운영자인 덕도 컸습니다. 또한 프로젝트 막판에 다른 저자 한분이 썼던 미리보기 글, 나이키를 위협하는 언더아머 (https://publy.co/contents/viewer/426) 가 온라인에서 매우 큰 흥행을 기록하면서 더 많은 고객 분들이 결제로 이어졌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예상 외"로 호응이 적었던 프로젝트는 칸 광고제 프로젝트와 같은 기간에 진행되었던 Foodtech 프로젝트 (https://publy.co/project/278/detail) 였습니다. 푸드테크가 국내에서 급성장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업계 종사자나 스타트업/투자 섹터에 계신 분들이 많이 보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희가 이 프로젝트의 매력을 타겟 고객들에게 충분히 널리 알리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ㅡ퍼블리는 문화 콘텐츠보다 경제 콘텐츠 IT콘텐츠가 많은 것 같다. 문화 콘텐츠에 지갑을 연다는 믿음은 많은 경우 착각일까.

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저와 김안나님이 자신있는 분야가 경영/경제/테크 분야이기 때문이고요. 저자를 섭외하거나 독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의 경쟁력이 타 분야보다는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문화 콘텐츠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은데요. 예컨대,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를 취재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책'이라는 문화 콘텐츠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독자들이 돈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지적 성장에 도움이 되거나, 본인 커리어에 도움이 되거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저희는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경영/산업 차원에서의 관점을 녹여서 만들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저와 전자책/테크 전문 정보라 기자가 같이 갔었고요, 올해는 김안나님과 롤링다이스 제현주 대표님이 저자로 가게 되었습니다.)

즉, 문화 콘텐츠라는 것은 정의를 정확하게 해 봐야 겠습니다만, 저희가 추구하는 '지적 콘텐츠'로서 소비자가 약 3~5만원의 돈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경영/산업/테크의 관점이 결합되어야 한다고 저희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서의 문화 콘텐츠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ㅡ피아니스트 정한빈 인터뷰를 보는데 400만원을 모금하겠다는 크라우딩 펀딩 계획을 봤다. 이 계획의 아이디어와 가격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진건지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신다면.

뮤직 컨시어지 이인한 대표님을 소개로 올 초에 만나게 되었는데, 이 분이 생각하는 클래식 시장의 문제의식과 저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비슷해서 금새 의기투합을 했습니다. 이 분은 정한빈의 선배로서 한예종에서 음악학 학/석사를 하신 분인데, 국내 클래식 공연 시장이 B2C 보다는 B2B(스폰, 초대권 남발) 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우수한 연주자들은 연습실에서 사느라 공연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연주자-관객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극복하고자 본인이 직접 공연기획사를 설립했습니다.

같이 일을 해보자, 라는 의견을 틈틈히 교류하던 중, 피아니스트 정한빈이 오스트리아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여름에 국내에 돌아오는 시기가 잘 맞았고, 또 정한빈은 젊은 연주자 중에서도 드물고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면서 글도 깔끔하게 잘 쓰기 때문에 추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피아니스트가 쓴 글과 함께 카페에서 열리는 살롱 콘서트를 묶어서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다른 프로젝트들과 비슷합니다. 저자가 쓰는 디지털 콘텐츠 + 오프라인에서 저자/독자와 소통하는 소수정예 행사가 상품의 기본 구조입니다.)

가격 결정은 (다른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인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있어 필요한 실비를 계산한 것이 BEP 이고요, 여기에서 목표 수익액을 +@ 해서 목표 펀딩금액을 설계하고, 몇명의 유료독자를 모을지를 계산한 이후에 가격을 결정하게 됩니다.

ㅡ누구에게나 내 시간은 소중하다. 그 소중한 시간,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읽을거리로만 읽고 싶다는 사람들의  생각도 당연할 것이다. 이 전제하에, 많은 큐레이션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쟁의 바다에서 박소령과 퍼블리의 장점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지만, 쓰레기의 바다이기도 하다. 퍼블리 큐레이션의 구체적 기준은.

('탐독'에서 움베르토 에코 인터뷰에 나온 내용이랑 비슷한 부분이네요. 그 부분이 매우 좋아서 체크해 둔 부분이기도 해서요)

위에서 말씀드린 내용과 답변이 중복될 것 같긴 합니다. 저희의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 큐레이션은 아니고요. (기존의 큐레이션 회사들이 어려운 이유는, 자체 콘텐츠가 아니라 다른 이들이 생산한 콘텐츠를 중개하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단순 트래픽 기반의 미디어/콘텐츠 회사들이 경쟁을 치열하게 하면서도 재무적 성과는 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희가 직접 기획해서 만드는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들이 광의의 큐레이션이라 할 수는 있습니다. 지적으로 훈련받고 끊임없이 유료 콘텐츠에 촉수를 두고 있는 저희 팀은 고객들이 어떤 콘텐츠를 구매해서라도 읽고 싶은지에 대해서 계속 연구를 하고요, (우선 저와 김안나님이 읽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게 최우선입니다. ㅎㅎ) 앞으로는 이를 감각적으로 기획하는 단계에서 머무르지 않고 실제 데이터 기반으로 정량적 보완을 균혀있게 가져갈 계획입니다.

ㅡ퍼블리를 시작한 뒤 가장 즐거웠을 때와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요. 비즈니스 차원에서는, 소비자 분들께서 만족했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해오실 때입니다. (고객의 목소리, 고객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자리를 온/오프라인에서 최대한 많이 열어두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저희가 '팬심'으로 사모했던 저자분들을 실제 저희 프로젝트의 저자로 모실 때입니다. 사실 현재 진행중인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이 그렇습니다. 저와 김안나님이 독자로서 좋아했던 저자분들을 설득하거나 혹은 신기하게도 저자분들이 직접 먼저 연락을 주셔서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고 있고요. 그럴 때 가장 기쁩니다.

작년에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 갔을 때, 앞으로 콘텐츠 비즈니스는 팬덤 기반의 비즈니스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희는 그 맥락에서는 확실히 저자들을 팬심에서 섭외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