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인 지난 16일 오후 중국 지린성 훈춘(琿春)에서 북한 나진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취안허(圈河) 세관 입구는 북새통이었다. 두만강대교를 건너 북한으로 가려는 화물 차량과 중국인 관광객 차량 100여대가 길게 줄을 늘어섰다. 화물 차량이 세관을 통과하는 데는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차량들 사이로 먹을 것을 파는 행상들도 보였다. 지난 3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대북 제재 결의 직후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본지 3월 7일자 A4면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중국인 스(石)모씨는 "제재 시행 이후 한동안 화물 차량이 줄었지만 지금은 그 이전보다 더 늘어 하루 북한을 오가는 차량이 1000대쯤 된다"며 "핵실험이 예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장사에 큰 영향은 없다"고 했다. 양국 간 늘어나는 물동량을 감당하기 위해 2014년부터 짓고 있는 신두만강대교(길이 549m)도 내달 준공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중국 정부는 강도 높게 북한의 5차 핵실험을 비판하고 있지만, 북·중 교역은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훈춘은 북한 나선(나진·선봉) 경제특구와 마주 보는 접경 도시로 랴오닝성 단둥(丹東)시와 함께 북·중 교역의 중심지이다. 북·중 교역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단둥~신의주 경로가 4차 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로 위축되면서 훈춘~나진을 이용한 교역량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中 세관 통과하는 화물차, 3월엔 썰렁… 지금은 북적 - 지난 16일 중국 지린성 훈춘에서 북한 나진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취안허(圈河) 세관 입구가 화물차와 관광객들이 탄 차량으로 붐비고 있다(오른쪽 사진). 지난 3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대북 제재 결의 직후에는 이 같은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왼쪽 사진은 지난 3월 한산한 취안허 세관 입구.

취안허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대북 제재를 반대했다. 한 중국인 사업가는 "북·중 교역을 막으면 손해 보는 중국인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며 "경제 제재는 안 된다. 정치 문제는 정치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극동에 있는 훈춘은 중국이 러시아·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중국은 훈춘~나선 루트를 통해 동해(東海)로 나가는 출구를 찾기 위해 이 일대의 교통 인프라를 확대하고 공단을 조성하는 등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북·중 교역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훈춘은 단둥에 비해 외부의 관심이 덜한 지역이지만 전체 북중 교역의 30%가량을 감당하고 있는 곳"이라며 "배후에 옌볜(延邊)이 있어 이곳을 통한 북·중 교역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취안허 세관에서 만난 중국인 사업가 10여명은 대부분 북한 핵실험에 대해 반대했지만, 대북 제재에 대해서도 고개를 저었다. 투먼(圖們)에서 북한 노동자 50명을 고용해 액세서리를 만드는 한 중국인 사업가는 "북한 근로자 일당은 중국인의 3분의 1 수준으로, 그들이 없으면 공장이 안 돌아간다"며 "북한은 밉지만 그들과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나진에 있는 의류 공장으로 옷감을 팔러 간다는 한 화물차량 운전사는 "(북한에서 들어온) 주문이 밀려 중추절 연휴에도 못 쉬고 있다"고 했다.

훈춘을 통해 북한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북한은 2000년대 들어 나진에 홍콩 자본을 끌어들여 외국인 카지노 호텔을 세우고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단둥을 통한 북한 관광은 평양·신의주·개성·판문점 등 볼거리 위주로 이뤄지는 반면, 훈춘 쪽은 카지노 관광이 중심이다. 훈춘의 한 중국 여행사 관계자는 "카지노를 하러 북한을 찾는 관광객이 지난해보다 30% 정도 늘었다"며 "핵실험 때문에 여행을 취소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취안허 세관으로 들어가는 두만강대교 바로 옆에는 신두만강대교가 건설되고 있다. 다음 달 완공되는 신두만강대교는 상판 시공이 모두 끝난 상태로, 이날은 포크레인 한 대와 레미콘 트럭 한 대가 나와 포장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중국은 1937년에 지은 기존 두만강대교가 물동량을 감당하기엔 노후하다고 보고, 2014년부터 약 250억원을 투입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왕복 4차선인 이 대교가 개통되면 현재 하루 평균 600t인 물동량은 2배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중 간 교역은 핵실험의 영향을 거의 받고 있지 않지만, 국경 인근 주민들은 핵실험에 대해 분노했다. 투먼에 사는 한 조선족 주민은 "핵실험이 있던 날 마을 주민들이 모여 북한 욕을 한 바가지 했다"며 "핵실험으로 오염된 물이 흘러들어오면 죄 없는 우리가 마시게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반문했다. 대규모 수해가 발생한 북한 함경도 지역을 도와온 주민들도 불만이었다. 북한은 8월 말부터 시작된 폭우의 영향으로 회령 지역을 중심으로 약 14만명의 수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함경도와 인접해 있는 옌볜조선족자치주는 북한 지역에 구호물품 등을 전달해왔지만, 이번 핵실험 이후 구호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옌지(延吉)의 한 봉사단체 관계자는 "우리가 준 비상식량과 옷 등을 받은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장군님이 이렇게 보살펴주시는구나'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며 "주민 생사는 아랑곳없이 핵 개발에만 매달리는 북한 지도자를 더 이상 도와주기 싫어 구호 작업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