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여·25)씨는 지난 7월 직장인으로서 첫 여름휴가를 맞아 국내 대형 여행사를 통해 필리핀 보라카이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여행 첫날부터 한국인 현지 가이드(30) 때문에 얼굴을 붉히며 다퉈야 했다.
이 가이드는 옵션 상품인 스쿠버다이빙, 스톤 마사지 등을 현지 판매가격보다 5~7배 비싼 가격에 강매하면서 "나를 통해 사지 않고 다른 곳에서 싸게 사면 여행기간 내내 서로 얼굴 보기 껄끄러울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어 "패키지 상품으로 여행 온 사람은 옵션상품을 구매하는 게 에티켓이다. 보라카이는 매우 좁은 섬이니 조심하라"고 협박하면서 '다른 현지인 옵션상품을 이용하면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강제로 서명하게 했다. 김씨는 서울에 있는 여행사 측에 항의지만, 해당 여행사 관계자는 "우리 홈페이지에는 좋은 후기도 많다. 마음에 안 들면 소비자원에 신고해도 좋다"고 했다.
올여름 다른 국내 대형 여행사를 통해 필리핀으로 3박 4일 여행을 갔다 온 주부 박모씨도 "현지 가이드 때문에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박씨의 현지 여행 가이드도 시도때도없이 '추가 옵션'을 강매했고, 박씨 일행이 개별적으로 리조트 내 스파를 이용한 것을 문제 삼으며 "다른 사람이었다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였을 것"이라고 협박조로 말했다. 박씨의 항의에 여행사 측은 "한 사람당 40달러인 가이드비 외에는 실제 손해액이 없어 여행경비를 환불해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해외여행을 떠난 사람이 모두 1931만명에 달할 정도로 해외여행이 보편화했지만, 여행지에서 옵션이나 팀을 강요해 빚어지는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가이드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소비자원과 한국관광공사, 한국여행업협회가 팁이나 옵션상품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외여행상품 정보제공 표준안'을 작년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해외여행 피해 사례 접수는 급증하는 추세이다.
한국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여행사를 통한 해외여행 관련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2012년 426건, 2013년 541건, 2014년 706건, 2015년 759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445건을 기록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 표준안을 시행하는 국내 여행사를 통한 해외여행에서 가이드에게 겪은 부당한 일을 호소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네티즌들은 "여행 중 피해가 생겨도 나 몰라라 하고 행사 중에 가이드나 인솔자도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옵션을 시킨다", "사고가 나도 다 소비자 몫으로 돌리고 덮으려고 난리를 친다" "거품 뺀 여행사라더니 옵션 강요로 다 챙겨 간다" 등의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소비자들이 사전 정보를 꼼꼼히 체크하지 않고 싼 가격만 보고 여행상품을 선택하는 것도 가이드와의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양대 관광학부 이연택 교수는 "아직 많은 소비자가 여행상품을 구매할 때 텔레비전이나 자동차를 살 때처럼 신중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가 값싼 상품만 추구하게 되면 여행사들도 싼 상품만 만들면서 옵션이나 팁으로 수입을 보존하고 책임은 회피하려는 악순환이 이뤄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여행사에서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하며, 규제를 어겼을 때는 행정심판을 받고 소비자원이나 여행업협회의 중재를 통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