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과학부 김범수 기자

추천도서 기사는 진작 쓰고 싶었던 기사라 멋 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많은 기자가 좋은 기사를 보여줘 ‘멋 내 봤자’란 생각으로 힘을 좀 빼고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힘’이라는 단어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앞서 말한 힘은 ‘겉멋’이라고 할 수 있고 ‘욕심’이나 ‘의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추천해드릴 책은 기자 생활을 하는 데 처음으로 힘이 빠졌을 때 만났습니다. 기자가 된 지 이제 만 3년 3개월이 된 제가 ‘힘 빠졌다’고 하면 우스울 수도 있지만요.

지금 소개할 이 책은 의욕 없던 제게 힘을 준 책입니다. 책 제목은 ‘카인’이고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출신 ‘주제 사라마구’입니다. 영화로도 제작된 ‘눈먼 자들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주제 사라마구가 2009년에 낸 책입니다. 2010년에 그가 세상을 떠났으니 그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카인

퇴근길에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카인’이라는 제목, 구약성서에서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묘사된 그의 이름을 딴 제목에 끌려 30분 정도 책을 읽는데 술술 진행됐습니다. 당시 저는 글자라면 읽기도 싫고 쓰기도 싫었던 그런 때였는데도 너무 잘 읽혀서 가방까지 바닥에 팽개치고 읽다 결국 책을 샀습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 미니북을 덤으로 준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학 시절 세미나를 같이 하던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하는 것과 관련해 “대학 졸업 후 일을 시작하면 그때까지 배웠던 것을 연료 삼아 일을 하는데 결국 이 연료는 떨어지게 돼 있다”며 “달리는 기관차에 계속 석탄을 집어넣듯이 무언가를 집어넣지 않으면 결국 퍼진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 석탄이란 것이 ‘독서’를 의미했는데, 이 책이 저에게 확실한 연료가 됐습니다. 1주일도 안 돼 책을 다 읽고, 기뻤습니다. 가끔은 ‘필요한 책’ 말고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쉬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잘 쓰고 싶다’는 의지도 줬습니다.

제가 원래 신화, 전설, 고전, 전래동화 등을 ‘비튼 것’을 좋아합니다. 카인은 ‘구약성서’를 비틀었습니다. 게다가 문체가 간결하고 끊김이 없어 잘 읽힙니다. 묘사가 워낙 뛰어나서 영화에서 특수효과를 더해 만든 장면이 그려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카인이 나귀를 타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모습을 비유하는부분이 압권입니다.

신을 거스르고 도전하는 초월적 존재인 카인은 구약성서 속 ‘야훼’가 보이는 잔인성에 반기를 듭니다. 그렇다고 카인이 영웅적 존재로 나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반영웅적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충격이 커서 성당이나 교회를 다니시는 분에게는 아주 안 좋은 기분만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작품이 발표됐을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다고 하네요.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주제 사라마구의 문장이 얼마나 잘 읽히는지 아실 수도 있습니다. 장면이며 인물, 의식의 묘사도 대단하죠. 무엇보다 선과 악, 도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그의 ‘힘’에 매료될 것이라고도 봅니다.

사람을 매우 지치게 했던 무더위가 가고 이제 좀 걷고 싶고, 못 만났던 사람들도 보고싶고, 일도 잘해보고 싶게 만드는 날씨가 됐습니다. 혹시 저처럼 지친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이 책이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세요, 내일도 힘들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