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성적이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던 탓일까. 생각보다 들 뜬 분위기는 아니었다. 동시에 극장가에서는 좀비의 활약이 대단했다. 좀비 장르에 이제 막 뛰어드는 대한민국으로서, 관록의 외국산 좀비와 비교해서 그 기량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 양질의 좀비가 깜짝 등장한 것이다. 영화 ‘부산행’은 금메달에 맞먹는 천만 관객 영화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올림픽·좀비와 함께였던 무더웠던 여름을 보내며…
엉뚱하게도 좀비와 올림픽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이 둘과 함께 엄청나게 더웠던 올 여름을 함께 지내고 나니, 소소하게 좀비올림픽을 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종목 및 금 선정은 물론 필자 혼자 한다. 올림픽도 끝나고 좀비 영화는 극장에서 내려갈 테니, 좋아하는 이 두 가지와 징그럽게 더웠던 올 여름과도 아울러 작별하는 나름의 인사랄까. 이 뜬금없는 조합이 필자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작은 즐거움이 되기를 바란다.
좀비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독특한(!) 외모에 있다. 기본적으로 좀비는 시체이기 때문에 움직이기는 하지만 부패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하여 살은 썩었고 눈동자는 흐릿하며 몸은 피로 범벅이다. 때로는 사지의 일부가 절단되기도 하고 심지어 내장이 공개되는 난처한 경우도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좀비영화를 볼 때 무엇보다 가장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좀비의 비주얼이다. 움직이는 시체의 몰골을 어떻게 디자인했는가는 좀비라는 장르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이 분야에서는 대체로 좀 더 잔인할 수록, 끔찍할수록 좀비영화의 팬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끔찍한 좀비의 몰골은 어떤 관객들에겐 매우 불편해서 아예 평생 좀비영화라곤 본 적도 없는 관객들도 아주 많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좀비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잘생긴 좀비가 나타난 것이다. 첫번째 종목은 ‘미모’다. 금메달의 주인공은 바로.
'웜바디스'는 좀비가 나오는 로맨스 영화다. 이 영화 속 좀비는 조금 특이한데 좀비들끼리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약간의 말도 할 줄 안다. 주인공 R은 좀비지만 '여자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고 심장이 뛰는 걸 느끼기까지 한다. R역을 맡은 니콜라스 홀트는 '스킨스'라는 TV 시리즈를 통해 당시 인기가 최고였는데 좀비 역할을 맡으면서 심약한 관객들에게도 좀비영화를 볼 기회를 선사했다.
본디 좀비는 시체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행동이 느리다. 하기는 썩어가는 몸으로 날렵하게 움직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이 깨지는 영화가 등장한다. 영화 '28일 후' 속 좀비들은 수준급의 달리기 실력을 자랑한다. 덕분에 쫓는 자·쫓기는 자 사이의 서스펜스가 확장되었고, '28일 후'는 이 분야의 기념비적인 영화가 되었다. 이후에 등장하는 좀비영화 속 좀비들은 점점 엄청난 속도로 주인공들을 쫓아다니게 되는데, 그래서 채택된 두번째 종목은 달리기. 좀비 중 달리기의 으뜸이는 누굴까.
영화 '28주 후'의 초반 추격 장면이다. 속도를 재본 건 아니지만 좀비에게 쫓기는 주인공의 심리적 압박감이 가장 잘 드러난 신이었다. 배경 음악이 그 효과를 배가시켜 주어서 더욱 인상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좀비에게는 단 한 가지의 욕구만 있다. 인육을 향한 욕구가 그것이다. 그 외 다른 인간적 감정은 없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그렇게 많고 많은 좀비가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것을 볼 때도 관객들은 별다른 감정적 동요가 없다. 그런데 여기 연인을 향한 순정으로 가득 찬 좀비가 있다. 좀비영화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좀비가 아닐까 싶은데, '웜바디스'의 R을 제친 그 주인공은 누구일까.
납치된 여자친구 좀비를 구하고 주인공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 순정 가득한 좀비에게서 듬직함(?)이 느껴지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소리에 민감한 좀비는 많이 볼 수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가무에 반응하는 좀비도 있었다. 특히 노랫소리에 이 좀비들은 근력에 불가사의 한 힘이 더 발휘되는가 보다. 음악을 가장 사랑하는 좀비가 아닐까 한다.
영화 '월드워 Z'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까마득한 높이의 벽을 무서운 집념으로 기어이 타고 오르는 이 장면은 좀비영화로서 가장 장관이었다고,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부산행의 좀비는 문조차 스스로 열지 못하고 빛이 없으면 앞으로 나갈 수조차 없이 열등하다. 대체로 좀비들은 지능이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뭐 시체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상황이다. 그런데 도구를 사용할 줄도 아는 아주 똑똑한 좀비도 있다고 한다. 지능 종목에서 금메달을 딸 만한 좀비는,
좀비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A. 로메로의 '랜드 오브 데드'는 좀비들을 다루면서도 뜻밖에 계급문제를 화두로 삼는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최상류층과 하층민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었고 그 밖에는 좀비가 있다. 하층민의 상류층에 대한 혁명에 좀비들이 도움을 주는 형국으로 영화가 진행되는데, 이러한 좀비들의 집단행동을 이끄는 '빅 대디'는 학습을 통해 도구를 사용하며,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심지어 자신들을 학살하는 인간에 대해 적의를 품기도 한다. 인육을 먹기 위함이 아닌 복수를 위해 '빅 대디'를 위시한 좀비들이 인간들의 섬을 침략하는데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
영화 속에 등장한 무수히 많은 좀비들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금메달은 무엇일까. 그들도 작은 역할이지만 영화 속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어엿한 연기자가 아닌가. 좀비가 하는 연기라는 게 흐느적거리는 몸 연기, 혹은 사력을 다해 뛰어야 하는 발 연기, 괴상한 소리를 내는 목소리 연기 등이 전부라고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이는 좀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번 종목은 '연기'다. 누구에게 최우수연기상을 수여할 것인가.
영예의 주인공은 '부산행'의 좀비들이다. 좀비영화로서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공은 단언컨대 감독도, 배우도 아닌 좀비를 연기한 백여명의 단역들이다. 20배의 예산을 더 쓴 '월드워 Z'의 좀비들과 '맞짱'을 떠도 될 만큼 수준 높은 좀비들의 활약으로 좀비물이라는 매니악한 장르로도 천만이 넘는 관객들에게 흥미진진한 광경을 선사할 수 있었다. 마지막 금메달은 얼굴 한번 제대로 화면에 잡히지 못했지만 나름의 영역에서 본인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흉측한 몰골도 마다하지 않은 수많은 무명배우들에게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