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서와 배삼룡, 이기동, 박시명 등이 출연했던 TV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는 흑백의 기억으로 또렷하다. 우리나라에 컬러 TV가 도입된 1980년 이후로도 이 프로그램이 5년간 더 방영됐으나 그 시절보다는 1970년대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았던 풍경만 생각난다. TV 앞에서 눈물 나고 배 아플 만큼 웃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쩐 일인지 그 시절 TV를 모셔뒀던 안방 풍경도 흑백으로만 떠오른다. 컬러라고 할 만한 물건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옷과 신발은 죄다 희거나 검었고 검은색 자개장롱과 흰색 밥그릇이 그랬으며 책과 공책, 연필을 비롯한 학용품들도 대개 흑백이었다. 어린 시절의 컬러풀한 풍경이란 고작해야 나무와 꽃, 노란 세숫대야, 그리고 빨랫줄에 널려 있던 빨갛고 파란 이불 홑청 정도인 것 같다.
'웃으면 복이 와요'는 대단히 웃기는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유머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도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머니도 저녁 설거지를 미룰 정도로 열광했었다. 식구들 모두 코미디 프로에 몰려 앉은 모습이 못마땅해 멀찌감치서 다 읽은 조간신문을 들추던 아버지도 웃음을 못 참아 근엄한 이미지에 손상을 입기 일쑤였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구봉서와 배삼룡이 출연한 '양반 인사법'이란 코미디다. 두 장돌뱅이가 양반이라고 속여 등을 맞대고 혼담을 주고받는데 양반 말투를 적은 쪽지를 보며 대화를 한다. 구봉서가 "별 밑에 인사법!" 하자 배삼룡이 "그건 제목이오" 한 뒤 "에헴 하고 기침한다"라고 한다. 구봉서가 "처음 면상하겠습니다" 하자 배삼룡이 "상면이오. 면상이 아니라" 하는 식이다. 이런 대화가 이어지다가 결국 마주 본 두 사람이 "새우젓 장사 배가 놈 아냐?" "장돌뱅이 구가 놈이 웬일이냐" 하며 나자빠지는 게 끝이다.
이기동 일행이 술집에 갔는데 빈 테이블 없이 만원이다. 이기동이 한 테이블에 가서 "지금 선생님 댁에서는 배고픈 아이들이 '아빠, 일찍 들어와' 하고 울며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고 연기하자 손님들은 "그래그래, 애들 생각해서 일찍 들어갑시다" 하고 일어선다. 이기동이 일행한테 외친다. "여기 자리 났어. 빨리 와!"
의사가 막 운명한 환자와 유족 앞에서 자기 눈을 까뒤집은 뒤에 "운명하셨습니다" 말하는 코미디도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처음 등장했다. 원래 이는 MBC에서 한 드라마를 촬영하던 도중 신인 배우가 저지른 NG 장면이었는데 코미디언들이 놓치지 않고 써먹었다.
요즘 '아재 개그'라고 하는 것들보다 시시하게 느껴지는 이런 코미디에 왜 그렇게 배를 잡고 뒹굴었을까. 그때 아마도 별달리 웃을 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에 동사무소에서 틀어주는 '새마을노래'의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 증대 힘써서/ 부자 마을 만드세" 하는 가사를 들으며 학교로 일터로 향했고 저녁마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 바칠 것을 태극기 앞에 서서 다짐하던 시절이다. 한국 사회 전체가 차려 자세를 하고 있던 때였다.
'웃으면 복이 와요'가 첫 방송을 한 것이 1969년이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한국의 1인당 GDP는 237달러로 지금의 100분의 1도 안 되던 때다. GDP가 그랬으니 모든 것이 지금의 100분의 1에 불과했다. 웃을 일도 지금의 1%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 TV 속 코미디언과 코미디 프로그램은 웃음을 보장해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아이들이야 그저 코미디라서 좋아했겠지만 어른들은 '잘 살아보세 시대'의 고단함을 막둥이와 비실이, 땅딸이의 슬랩스틱을 보면서 잊곤 했을 것이다.
지난 27일 작고한 구봉서 선생을 4년 전 그의 자택에서 인터뷰했었다. 당시 86세였던 그는 몸이 불편한 와중에도 강원 삼척이 고향인 부인 정계순씨를 소개하면서 "나한테 시집 안 왔으면 지금쯤 오징어나 말리고 있겠지" 하며 연방 농담을 했었다. 그는 "눈물을 알지 못하면 웃음도 알 수 없고, 그런 페이소스가 깔린 코미디가 진짜 코미디"라고 했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희극배우인 찰리 채플린 역시 자서전에서 "유머 덕분에 우리는 인생의 부침(浮沈)을 견뎌낼 수 있다. 유머는 엄숙함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드러낸다"고 했다.
구봉서 선생의 부고(訃告)를 읽으며 우리 부모님 세대의 1960~70년대를 위로해준 한국 1세대 코미디언들을 새삼 생각해본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부모님 세대가 삶의 부침을 견뎌내게끔 도와준 그 희극배우들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