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30일(현지 시각) 미국 IT업체인 애플이 법인세율 특혜를 받는 아일랜드에 유럽 본부를 둬 세금을 빼돌렸다는 이유로 최대 130억유로(145억달러, 약 16조원) 규모의 법인세 추징을 결정했다.

EU가 단일 기업에 대해 결정한 추징세로는 역대 최대이다. 지금까지는 프랑스 에너지그룹 EDF에 부과된 14억유로(약 1조8000억원)가 가장 컸다. 애플이 지난해 매출 2340억달러, 순이익 534억달러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작년 순이익의 27%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로이터통신은 "최종 금액은 과세권을 가진 아일랜드 정부가 확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애플과 아일랜드 정부는 "불법행위는 없었다"며 EU 법원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애플은 어떤 회사일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마그레테 베스타거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애플 법인세 특혜'와 관련된 조사 결과를 담은 130쪽짜리 결정문을 발표했다. EC는 지난 2014부터 아일랜드에 있는 애플 유럽 본부 등에 대해 정밀 조사를 진행했다. 베스타거 집행위원은 "EU 회원국은 특정 기업을 골라 세금 특혜를 줄 수 없다"며 "아일랜드 정부가 애플에 제공한 법인세 특혜는 정부 보조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공정 경쟁을 규정한 EU 법률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애플은 1991년부터 2015년까지 법인세 감면 특혜를 받았다. 2003년에는 이익의 1%만 세금으로 냈고, 2014년에는 실효세율(실제 세금 부담률)이 0.005%까지 떨어졌다. 아일랜드의 공식 법인세율은 12.5%이다. 미국 CNN은 "이번에 추징하는 130억유로는 2003년부터 2014년까지 12년간 불법적으로 감면된 세금액이며, 여기에 이자가 추가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EU 측은 아일랜드 정부가 애플의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1991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대폭의 감세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이후 애플은 유럽 시장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페이퍼컴퍼니(서류상의 회사)인 아일랜드 내 유럽 본부로 옮겨 이익을 거둔 곳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고, 아일랜드에서만 초(超)저율의 법인세를 납부했다는 것이 EU의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일랜드는 경제성장과 고용 촉진을 위해 세금을 대폭 감면해서라도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애플은 아일랜드에서 5500여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애플은 "EC의 결정은 국제사회의 세금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향후 EU 국가에 대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반발했다. 아일랜드 정부도 "개별 국가의 조세 주권을 침해하려는 EC에 맞설 것"이라며 EU 법원에 제소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EU와 미국계 글로벌 기업 간 갈등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EU는 지난해 스타벅스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에 최대 3000만유로의 세금을 추가 납부하라고 결정했고, 아마존과 맥도널드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EU는 또 다음 달 저작권법 개혁안을 마련해 구글 등 검색 엔진 업체들이 유럽 언론사의 뉴스 콘텐츠를 사용할 경우 사용료를 내도록 할 계획이다.

EU의 규제가 갈수록 엄격해지면서 미국과 EU의 힘겨루기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최근 구글 법인세 추징과 관련해 "EU가 법을 집행하는 수준을 넘어 초국가적인 과세 당국으로 군림하려 한다"며 "필요할 경우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