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시에나에서 시골길로 한 시간쯤 들어가면 나오는 볼테라라는 곳에 2010년쯤 갔었어요. 그곳 시장을 만났더니 '성 베드로에 이어 제2대 교황을 지낸 성 리누스가 이곳 출신'이라고 무심하게 자랑하더군요. 마치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 다음인 윤보선 대통령이 아산 분이지'라고 말하듯 쓱 얘기했는데, 그게 알고 보면 예수님의 첫 제자인 성 베드로의 후임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아, 그 이탈리아식 역사 호흡이라니…. 정말이지 아연한 노릇이었습니다!"
김영석(64) 페레로 한국지사 고문은 1978년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외무사무관에 임명된 이래 2013년까지 35년간 외교관으로 일했다. 뉴질랜드·유고슬라비아·노르웨이 같은 부임지를 거쳤고, 미국 뉴욕에서 UN대표부 참사관을 했다. 2010~13년엔 주한 이탈리아 대사로 있었다. 3년여 이탈리아에 머무르면서 그는 그렇게 "머릿속까지 하얗게 아득해지는" 기분을 종종 느꼈다고 했다.
2000년 전 고대 로마시절 조성된 옛길이 아직도 전국 간선국도로 활용되는 나라, 로마 초대 황제 옥타비우스 아우구스투스의 사후 2000주기 추모행사를 마치 시골 마을 경로잔치처럼 태연하게 여는 나라. 김 고문은 그렇게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곳곳에서 고대 로마의 찬란한 시작을, 전 세계 문명을 바꿔놓은 기독교 문화의 꽃봉오리를, 라틴어의 발원지를 다시 발견했고, 그 경험을 묶어 최근 '이탈리아 이탈리아'(열화당)라는 이름의 인문기행 서적으로 펴냈다. 제목은 여행책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인문 상식을 촘촘하게 교직한 본격 교양서에 가깝다. 그는 "이젠 우리나라 사람들도 단순히 '저 교회 진짜 크네!' '이 그림 정말 예쁘다'로 일관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식의 관광을 넘어, 여행이라는 것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알고 봐야 진짜 여행"
―왜 지금 이탈리아일까.
"해외여행 2000만명 시대 아닌가. 다들 소득도 높아지고 소비 수준도 높아졌는데, 여전히 외국에선 관광만 하고 오는 느낌이 있었다. 젊은 친구들이 인터넷에 남기는 여행기를 봐도 그렇고, 서점에 쏟아지는 여행서적을 봐도 그렇다. 우리 수준을 생각하면 이제는 '좋다' '멋지다' '근사하다' 식의 평면적인 감상만 남기고 오는 게 좀 민망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관광(sightseeing)을 넘어 여행(travel)을 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디부터 시작해야 될까. 그 답을 찾으니 자연스럽게 이탈리아가 떠올랐다. 내가 3년 동안 대사로 일했던 곳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서양 문명의 중심지이니까. 유네스코가 지정한 유럽 지역 세계문화유산의 40%가 이탈리아에 있다. 이탈리아를 다니면서 근원과 그 문화적 두께를 헤아릴 줄 알게 된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두께를 제대로 가늠하려면 공부를 좀 하고 가야겠다.
"대단한 공부랄 것도 없이 그냥 사전 준비만 해 가도 다르지 않겠나 싶었다. 가령 고대 로마 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에트루리아인이 문명을 꽃피웠다는 것, 로마제국이 천년의 광휘를 발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 초기 기독교 이래 기독교의 총본산지가 또한 로마라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할 것이다. 르네상스 중심지도 이탈리아였고, 팔음계를 창안한 것도 이탈리아였다. 포크나 나이프도 이 나라에서 나왔다. 음악·미술·패션·음식이 이탈리아에서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충 이 정도의 큰 틀은 알고 먼 나라로 떠나야 생산적인 여행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책을 썼다. 여행서적을 뒤져봐도 관광지나 먹거리 소개, '힐링'을 주제로 하는 에세이 종류밖엔 없어서 아쉬웠다. 여행의 뼈대를 구성해줄 인문서가 통 없는 거다. 떠나기 전 몇 시간만 투자해서 읽어도 이탈리아의 역사와 문화의 맥락을 어느 정도는 손에 잡을 수 있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시작은 '이탈리아학 입문'. 이탈리아의 지리적·역사적 특성을 먼저 이해하고, 그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반도의 중심지를 헤집는다. 로마·라치오·피렌체·나폴리·움브리아·베네치아·시칠리아·밀라노 같은 곳이다. 끝으론 이탈리아가 19세기 통일 이후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정리한다. 김 고문은 "이탈리아를 나라로서라기보다는 한 문화 내지는 하나의 문명으로 주목했다"고 했다.
―문화라는 맥락을 모르면 비행기 타고 날아가도 제대로 볼 것을 못 보고 돌아온다는 얘기일까.
"그렇다. 가령 라치오 주(州)에 그냥 가면 도시가 밋밋해 보인다. 이 지역에 얽힌 신화나 전설을 잘 모른다면 흥밋거리가 덜할 거다. 여기가 고대 로마 이전 에트루스키 사람들이 공동체 문명을 형성했던 지역인 걸 안다면, 여기서 보는 고분벽화나 성벽이 달리 보인다. 코르포라초니 광장에 가면 바닥에 2000년 전 상인들이 물건을 사고팔 때 취급상품이나 원산지까지 표시해놓은 모자이크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화려한 토스카나 지역이 유화라면 여긴 수채화쯤 되는 거다. 뭘 볼지 정해놓고 가서 보는 것도 좋지만, 가서 부딪히며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다. 그 기쁨이 온전한 여행을 빚어낸다고 믿는다."
―특히 인상적인 곳을 꼽는다면?
"어느 한 곳 빼놓을 수가 없지만,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기억이 있는 곳은 피렌체다. 그곳에서 람베르토 디니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과 점심을 먹었는데, 그 사람이 미국 올브라이트 장관을 초청했을 때 얘기를 해줬다. 올브라이트 장관이 눈앞의 한 빌라를 가리키며 '언제 지어졌느냐'고 물었는데, 이 외교위원장이 '미 대륙이 발견되기(1492년) 수십 년 전'이라고 대답했다는 거다(웃음). 미국 대륙의 명칭이 아메리고 베스푸치(1454~1512)라는 탐험가 이름에서 따왔다는 건 다들 알 것이다. 그런데 그 베스푸치가 알고 보면 피렌체 토박이다. 피렌체 사람들의 문화적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여행을 할 때 굳이 이렇게 인문학적 지식으로 무장을 해야만 할까. 머리를 비우고 즐기다 와도 되는 것 아닌가.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개인적인 깨달음이 있었다. 2010년 대사로 부임하기 전에도 사실 이탈리아에 갈 기회는 종종 있었다. 중요한 관광지나 미술품은 다 보고 다녀갔다. 그 이후 다른 나라를 계속 돌며 유럽 전체에 대한 지식이 천천히 쌓였고, 한 해 한 해 읽은 책이 늘어갔다. 그러고 나서 대사로 부임해 다시 이탈리아를 와보고는 무척 놀랐다. 이 나라를 처음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다. 여러 번 갔던 곳을 다시 가봐도 '아니, 이랬던가?' '아, 이런 게 있었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탈리아의 역사적 층과 문화 폭이 두꺼워,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것도 있지만 내게 쌓인 게 많아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때 알았다. 제대로 보려면 결국엔 일단 눈부터 떠야 한다는 걸(웃음)."
호기심을 넘어 탐구심으로
'이탈리아 이탈리아'엔 참고문헌 목록만 세 페이지 넘게 실려 있다. 2000년대 출간된 책보다 미국의 미술평론가 베렌슨이 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들(1953)', 메리 포터가 쓴 '바티칸 미술 (1903)', 페기 구겐하임이 쓴 '예술중독자의 고백(1960)' 등의 다채로운 책 목록이 많다. 김 고문은 "뉴욕에서 UN 대표부 참사관을 하던 시절에 시간이 되면 맨해튼 안팎에 있는 헌책방을 뒤져가며 구입한 책들이다. 인터넷 치면 나오는 책들이 아닌 진짜 오래도록 곁에 두고 읽은 책들"이라고 했다.
―배경 지식을 쌓은 시간이 느껴진다.
"일부러 마음먹고 했다면 이렇게 못 했을 것이다. 워낙 호기심이 많아서 어느 나라에 가도 이것저것 다 뒤져보고 찾아보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유럽 미술이나 역사에 대해선 호기심을 넘어선 탐구심이 생겼다. 그것이 이탈리아 대사를 거치면서 증폭됐던 것 같다."
―부임지가 이탈리아만은 아니었는데.
"재밌게 지냈던 곳은 많다. 노르웨이에선 사회민주주의의 영향으로 평등한 문화를 지향한다. 외교관이건 국회의원이건 특별 대접이 전혀 없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몇 해라도 있을 수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다. 1985년에 영국 런던에서 동구권학을 가르치는 학교(SSEES·School of Slavonic and East European Studies)에서 2년 동안 연수했는데 그 덕에 유고슬라비아 공관을 창설하러 나갈 기회를 얻었다. 그러다가 사라예보 전쟁이 터져서 나중에 공관을 폐쇄하고 한국에 돌아와야 했었고…. 그럼에도 이탈리아에서 지낸 시간이 기억에서 가장 강렬한 걸 보면 역시 모든 외교 생활의 마지막, 그 농축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외교관도 결국엔 주재국에선 주변인이다. 주변인의 눈으로 유럽을 보는 시각이 생겼을 것도 같다.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도 그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일본이라는 나라를 통해 외국 문물을 받아들였고, 유럽 문명을 그들의 해석을 거친 틀 속에서 이해하곤 했다. 그 후엔 미국의 영향 아래 놓이면서 미국의 시각으로 유럽을 보게 됐고. 로마 얘기를 시오노 나나미 같은 작가를 통해 먼저 보는 식인 거다. 유럽 땅의 발바닥을 긁어 보려면 우리가 손가락을 직접 쫙 뻗어봐야 하는데, 그 사이에 늘 일본이나 미국이라는 밑창이 끼어 있어서 아무리 긁어도 시원한 맛이 없는 것과도 비슷하다. 한국인의 눈으로 유럽 문명을 해석하는 책을 쓰려 했다."
―또 다른 책을 쓸 생각이 있나.
"유고슬라비아 공관에서 일하면서 탈냉전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봤다. 사상으로 무장했던 나라가 무너지고 일곱 개 나라로 쪼개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아무리 철두철미하게 사상의 벽을 쌓는다 해도 그것이 모래처럼 흩어지는 건 결국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영속적인 힘을 지닌 건 사상이 아니라 결국 문화더라. 그때 나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번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