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수 특별감찰관이 18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 직권남용과 횡령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함에 따라 우 수석의 거취가 주목되고 있다. 민정수석은 검찰 등 사정 기관을 총괄하는 자리인데 현직을 유지하면서 검찰 수사를 받는다는 건 정치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검찰 등에선 이날 "결국 우 수석이 사의를 표명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왔다.

◇박 대통령이 만든 특별감찰관제

청와대는 그동안 "의혹 제기만 있지 우 수석의 불법이나 비리 혐의가 확인된 것도 없는데 물러나는 건 맞지 않는다"고 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이런 입장을 그대로 가져가기가 어려워졌다. 우선 감찰 결과로 인해 우 수석의 범죄 혐의가 짙어졌다. 특별감찰관법에 따르면 수사 의뢰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하도록 돼 있다. 특별감찰관실이 수사 의뢰를 했다는 건 한 달간의 감찰을 통해 우 수석의 직권남용과 횡령 등 혐의가 범죄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우병우 민정수석이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앉아 있다. 특별감찰관은 18일 우 수석에 대해 직권남용과 횡령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청와대로선 이 제도를 박 대통령이 만들었고 이 특별감찰관도 박 대통령이 임명했다는 점 역시 부담이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의 비리와 부패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로 특별감찰관제를 공약했다. 박 대통령은 "매 정권마다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가 계속 발생해 국민 불신이 심화되고, 감찰의 독립권이 보장되지 않아 적절한 수사가 이뤄지기 어렵다"면서 "국회가 추천하는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하고 조사권을 부여하겠다"고 했었다. 이후 여야(與野)는 2014년 3월 특별감찰관 신설 관련 법률을 통과시켰고 작년 3월 첫 특별감찰관으로 이석수 변호사를 임명했다. 임명 당시 청와대는 이 특별감찰관에 대해 "22년간 검사로 재직하면서 감찰 업무의 전문성과 수사 경험을 두루 갖춘 적임자"라고 했다. 이런 특별감찰관이 '수사 의뢰 1호'로 결론을 낸 것이 이번 우 수석 건이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날 "특별감찰관 제도는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를 다루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낸 제도"라며 "대통령과 정부에 주는 부담감을 고려하여 우 수석이 결심해야 할 시점"이라고 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부담

[검찰수사 앞에 선 우병우 민정수석]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누구?]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상임위에서 '우병우 청문회'를 피할 수 없다. 여당에서조차 "우 수석이 출석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했었다. 더민주는 특검을 요구하고 있고, 여론을 고려할 때 여당으로선 막을 수 있는 상황도 못 된다. 지금도 여당 의원 대다수가 "이대로 가면 특검은 피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우 수석이 현직에 있으면서 수사를 받는 건 무리라고 보고 있다. 형사 전문 김영운 변호사는 "특별감찰관의 '수사 의뢰'라는 결론이 범죄 혐의에 해당한다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내려지는 것인데 우 수석이 현직에 있다면 수사에 착수하기도 어렵고, 수사를 하더라도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 수사 경험에 비춰 보면 검찰 권력이 막강하다고 해도 청와대를 당할 수 없다"며 "특히 민정수석실의 경우 말단 행정관 한 명 조사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검사 신분인 법무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민정수석은 검찰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검찰 인사를 주무르는 자리"라며 "그런 민정수석을 수사하라고 한다면 '수사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민정수석은 사정 라인을 총지휘하는 사람이고 검찰 수사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직(職)을 계속 유지하면 수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청와대 내부에서도 고민이 나온다. 한 행정관은 "검찰 수사를 받는 민정수석이 사정을 총괄할 수 있겠느냐"고 했고, 또 다른 행정관은 "특별감찰관 결정을 무시하면 우리가 만든 제도와 우리가 임명한 사람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고 했다. 그들보다 고위급의 다른 관계자는 "뭐라 할 말이 없다"며 "우 수석에게 누군가 말을 해야 하는데 누가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