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낸 박형규(93) 목사가 18일 오후 5시 30분쯤 노환으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1923년 경남 마산 출생인 박 목사는 부산대 철학과를 다니다 6·25 전쟁으로 중퇴한 후 일본 도쿄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59년 서울 공덕교회 부목사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평범한 목회자로 지내던 그는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경무대 앞 궁정동에서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나오던 중 총에 맞아 피 흘리는 대학생들과 마주친 것. 그는 당시를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예수를 떠올렸다"고 회고한 바 있다.

본격적인 민주화운동 참여는 1970년대부터였다. 그는 1973년 서울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유신 반대 전단을 배포하려다 체포돼 기소된 것을 비롯해 모두 6차례에 걸쳐 투옥됐다.

1974년에는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2012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78년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발표한 '3·1민주선언'으로 기소된 사건은 2014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1971년부터 서울 제일교회 담임목사를 맡아 1992년 은퇴하기 전까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198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1983~85)을 지냈다. 목회 현장에서 은퇴한 후에도 노동인권회관 이사장,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민주개혁국민연합 상임고문,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2일 오전 9시. 장례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02)2072-2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