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주목받는 K팝의 직계 조상은 1990년대 '신세대 댄스 가요'다."
대중문화 연구자인 이규탁(38·작은 사진) 조지메이슨대 인천글로벌캠퍼스 교수가 최근 펴낸 '케이팝의 시대'(한울)에서 1990년대 댄스음악에 주목했다. 2012년 싸이의 '강남 스타일' 이후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K팝의 연원(淵源)을 거슬러 올라가면, 김건모와 터보, 쿨, '1세대 아이돌'인 H.O.T.와 젝스키스 등이 활동했던 1990년대 댄스 음악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K팝의 탄생과 연원, 확산 과정을 분석해 단행본 분량(230쪽)의 연구서로 펴낸 건 드문 경우다.
1990년대 대중문화는 최근 TV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영화 '건축학 개론',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등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이 교수는 "1990년대 음악 산업의 세계화 추세 속에서 신선하고 세련된 댄스 음악을 원하는 수용자들의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탄생한 것이 아이돌 그룹과 연예 기획사 시스템"이라며 "이 시스템이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서 체계적으로 변모한 것이 오늘날의 K팝"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SM·JYP·YG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들은 1990년대 인기를 얻었던 댄스 가수들의 적자(嫡子)"라고 했다.
이 교수는 1990년대 후반 아이돌 그룹과 현재 K팝을 주도하는 아이돌 그룹의 공통점으로 3가지를 꼽았다. 리드 보컬과 래퍼, 댄서 등으로 철저하게 역할이 구분된 그룹 형태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고, 화려하면서도 절도 있는 군무(群舞)를 강조하며, 데뷔하기 전에 수년간의 연습생을 거치는 과정이 모두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반면 음악적 차이도 적지 않다. 1990년대에는 'J팝'으로 불리는 일본 대중음악의 세례를 받았다면, 지금은 리듬앤드블루스(R&B)와 힙합의 영향력이 크다. 또 1990년대 댄스 가수들은 '토종' 한국인이 대부분이었지만, 현재 아이돌 그룹은 교포뿐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참여할 만큼 인종·민족 구성이 다양해졌다. 이 교수는 "지금의 K팝은 세계 대중음악이 성공적으로 토착화한 사례이자, 비(非)영미권의 음악이 세계화하는 데 성공한 흔치 않은 경우"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영문학과 재학 시절부터 학과 밴드에서 키보드·베이스·드럼 등을 연주했던 아마추어 음악인 출신이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에서 '1990년대 한국 댄스 가요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쓴 뒤, 미국 조지메이슨대에서 'K팝의 세계화'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는 대중음악 블로그도 운영하는 '재야의 고수'이기도 하다. 당초 취미로 시작한 일이 본업이 된 경우인 셈이다. 이 교수는 "1980년대 박남정과 소방차, 김완선 시절부터 30여년간 한국 댄스음악의 팬이었다"면서 "예전에는 음악 평론가와 학자들 사이에서도 천대받거나 무시당했던 댄스 음악이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의 반열에 오른 것도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K팝과 민족주의 정서' '2000년대 히트곡으로 살펴본 한국 대중음악사' 등이 그의 다음 연구 과제다. 이 교수는 "한·중·일(韓中日)에는 과거사 문제와 외교적 쟁점이 많기 때문에 부침(浮沈)은 있겠지만, K팝은 세계적으로도 충성도 높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인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