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에서 김희진(25·사진)은 단연 눈에 띄는 선수다.

185㎝의 장신에 짧은 머리를 한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남자 선수가 여자 경기에서 뛰는 것 아니냐"고 착각할 정도다. 코트 밖에서도 야구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운동화에 바지만 입고 다니는 탓에 공중화장실에서 그와 마주친 여자들이 비명을 지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김희진이 남자를 닮은 건 외모만이 아니다.

코트 위에서 강력하게 뿜어내는 스파이크 서브 실력은 웬만한 남자 선수 못지않다. 김희진은 지난 5월 올림픽 예선전(일본 도쿄)에서 서브 부문 1위(9개)에 오르며 한국의 본선 진출을 이끈 주역이었다.

그러나 본선 무대 초반 김희진은 주춤했다. 조별 리그 1·2차전에서 그의 장기인 서브 에이스는 단 한 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다. 득점도 두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김희진의 부진을 누구보다 마음 졸이며 지켜본 사람은 그의 어머니 김성호(60)씨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을 늦둥이 막내딸을 위해 어머니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카카오톡 메시지밖에 없었다. '자랑스러운 내 새끼. 어깨 쫙 펴고, 다른 나라 선수들 앞에서도 자신감 있게 서주리라 믿는다. 어떤 상황에서든 실수해도 움츠리지 않으리라 마음에 새기고 (…) 건강한 모습으로 화면에서 보자꾸나.'

김희진의 어머니가 아르헨티나전을 앞두고 딸에게 보낸 격려 메시지.

[김희진 선수의 프로필]

김희진은 아르헨티나와 대결을 12시간 앞두고 인스타그램에 어머니가 보내준 메시지를 캡처해서 올렸다. 김희진의 카톡에는 어머니가 '세젤사♡'로 저장돼 있었다. 세젤사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줄여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신조어다. 어머니의 메시지에 늘 짧게만 답하던 '아들 같은 딸'은 오랜만에 긴 답장을 보냈다. '엄마 딸 잘하고 갈게.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이번 올림픽 분명히 잘될 거야. 우리 준비 기간 노력도 많이 하고 힘들었으니 보상받고 돌아가야지~.'

어머니의 기를 받은 덕분일까. 11일 열린 아르헨티나전(브라질 리우 마라카낭지뉴)에서 오른쪽 날개 공격수 김희진은 펄펄 날아올랐다. 세계 랭킹 9위인 한국은 세트 스코어 3대0(25―18 25―20 25―23)으로 12위 아르헨티나를 완파했다. 김희진은 서브 에이스 3개와 블로킹 1개를 보태며 17득점을 올렸다. 한국은 2승1패로 A조 3위에 올랐다. 한국은 남은 브라질전과 카메룬전에서 최소 1승 이상을 거두면 8강에 자력으로 진출한다. 올림픽 3회 연속 제패를 노리는 강호 브라질(세계 2위)과 대결은 13일 오전 10시 35분에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