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논설위원

[늘어나는 中 규제 장벽에 '사드 보복' 걱정까지]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협박을 보며 김훈의 '남한산성'을 다시 꺼냈다. 병자호란 47일을 다룬 이 책은 읽을 때마다 참담하다. 380년 전 우리는 힘도 없이 중국에 맞섰다가 참변을 당했다. 중국은 무력과 공포로 우리의 국가적 자존심을 마지막까지 짓밟았다. 그때의 굴욕이 기억세포 깊숙이 새겨져 민족적 트라우마가 됐다.

사드 배치를 놓고 중국 눈치 보기가 무성하다. 눈치가 지나쳐 과민 반응까지 나오는 것은 기억 속 중국 트라우마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중국 매체가 한마디 던지면 당장에라도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올 듯 술렁거린다. 복수 비자가 축소되고 배우 몇 명 스케줄이 취소됐을 뿐인데 보복이 시작됐다고 웅성대고 있다.

중국은 구두탄(口頭彈)만 쏘아댈 뿐 아직 보복은 시작도 안 했다. 그런데 우리가 벌써부터 겁먹고 늑대다, 호랑이다 전전긍긍하는 꼴이다. 중국 공산당 선전 매체는 그런 우리에게 "마음속에 꿀리는 게 있으니 과민 반응한다"고 비아냥거렸다. 조롱당해도 할 말이 없다.

사드는 대한민국의 안보 이슈다. 북한 미사일을 막아낼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중국 보복론'이 논란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말았다. 안보 논쟁은 뒷전으로 밀리고 중국이 언제 보복해올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중국의 엄포는 사드 반대파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야당 국회의원들까지 베이징에 날아가 중국의 말 협박을 국내에 생중계했다. 우리가 알아서 기어주니 중국은 속으로 웃고 싶을 것이다.

사드 반대 진영에선 '제2의 병자호란' 운운하는 말까지 나온다. 반대파들은 우리가 미국에 동조해 중국의 보복을 자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명(明)의 편을 들어 청의 침략을 부른 실수를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왜 그토록 패배주의를 떨쳐버리지 못할까. 이제 우리는 병자호란 때처럼 약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380년 전 우리에겐 다 죽어가는 명나라밖에 없었다. 지금은 한·미 동맹이 있고, 한·미·일 협력 체제가 있다. 수많은 대항 카드를 손에 쥐고 있다.

우리 혼자 외롭게 중국의 위협 앞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중국이 벌여놓은 전선(戰線)은 난사군도도 있고 센카쿠도 있다. 중국이 우리에게 잘못 대립각을 세웠다간 국제사회에서 고립된다. 맘대로 칼을 휘두를 형편이 못된다.

많은 사람이 '제2의 마늘 파동'을 걱정한다. 16년 전 우리는 중국산 마늘 때문에 호되게 굴욕 당했다. 당시 우리가 중국 마늘에 긴급 관세를 매긴 것은 소탐대실의 판단 미스였다. 하지만 관세 자체는 WTO(세계무역기구) 절차에 따른 정당한 조치였다. 여기에 중국은 한국산 휴대폰 수입 중단으로 무자비하게 보복했다. 국제 통상 규범을 무시하고 주먹을 휘두른 것이었다.

이 사건은 한국 경제에 쓰라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러나 또다시 그때처럼 무지막지한 무역 보복을 당할 가능성은 적다. 마늘 파동 때 중국은 WTO 가입 전이었다. 지금 중국은 WTO 회원국이 돼 '시장경제 지위'까지 따내려 애쓰고 있다. 통상 질서를 거스르는 일은 피해야 할 처지다.

우리는 중국 시장의 거대함에 압도돼 겁부터 먹고 있다. 싸우면 우리만 죽어난다는 피해 의식이 강하다. 부분적으로 맞지만, 한국 경제의 실력이 그 정도로 허약하진 않다.

중국에도 한국은 수입 1위국이다. 전체 수입의 10%를 한국에서 들여간다. 그 상당 부분이 반도체 같은 핵심 부품과 소재다. 중국은 한국에서 중간재를 사다가 가공 수출해 돈을 번다. 그만큼 중국 경제도 한국 의존도가 높다. 만약 중국이 무역 분쟁을 벌인다면 자신도 피해 입을 각오를 해야 한다.

중국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의 보복은 '치사한' 형태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겉으론 아닌 척하면서 뒤로 괴롭히는 것이다.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한다든지, 비관세 장벽으로 애먹이는 식이다. 기업들로선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견디지 못할 만큼 치명적인 보복은 아니다. 이 정도도 버텨내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나라도 아니다. 중국이 치사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중국 쪽이다. 국제사회에서 낙인 찍히고 고립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버텨서 스스로 결정한 국가 의지를 관철해내야 한다. 여기서 후퇴하면 병자호란의 트라우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지금 정말로 걱정할 것은 중국의 위협이 아니라 우리 내부다. 소설 '남한산성'이 그린 병자호란의 실체는 '성(城) 안의 싸움'이었다. 김훈은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었다'고 썼다. 적은 밖에 와있는데 성 안에 갇혀 우리끼리 말(言)로 싸웠다.

지금 우리 모습도 그렇다. 우리를 위협하는 공동의 적이 밖에 있는데 안에서 분열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제2의 병자호란'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