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올림픽의 열기로 가득한 리우데자네이루는 어디?]

어린 시절부터 나는 홀수 해 여름보다는 짝수 해 여름을 좋아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월드컵 축구나 올림픽이 개최되는 여름은 짝수 해이기 때문이다. 기록적인 폭염에 지친 많은 사람에게 '1월의 강'(리우데자네이루)이라고 불리는 남미 도시에서 지금 펼쳐지는 올림픽 드라마가 그나마 단비가 되고 있다. 유독 모기가 주목받는 이번 대회의 또 다른 화제는 국기 대신 오륜기를 가슴에 새기고 출전한 10명의 국제 난민(難民) 팀이다. 메달 획득보다 자신들이 마지막 난민 팀이 되길 더 원한다는 그들에게 큰 응원을 보내고 싶다.

누구에게나 가슴을 뛰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음악일 수도 있고, 여행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 그것은 스포츠였던 것 같다.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던 두 대학 간의 정기 체육대회(연고전)를 중학교 때부터 쫓아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체육대학에 진학하는 것에 대해 고민도 했었다. 이 철없던 시절 내 머릿속의 행복 그림은 꽤 단순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거나 월드컵에서 골을 넣는 것 같은 짜릿한 경험이 있어야만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행복의 표상일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큰 무대에서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짜릿한 '금메달의 순간'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진학이든 승진이든 금빛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한창 진행되던 여름, 나는 행복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행복에 대한 많은 과학적 자료를 접하면서 나의 철없던 행복관도 수정되었다. 지도교수가 읽게 한 논문 한 편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닌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라는 제목의 논문이었다. 방대한 자료를 통해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을 비교해 보면, 이 두 그룹의 결정적인 차이는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즉,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휘황찬란한 인생 메달을 몇 개 걸고 사느냐가 아니라, 매일 누구를 만나 어떤 작은 재미들을 느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든 일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해 버리기 때문이다. 인생의 그 어떤 좋은 사건도 지속적인 기쁨은 주지 못한다. 고시 합격 소식에 환호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삶에 생긴 긍정적인 '변화'에 감정이 잠시 반응하는 것이다. 인생의 변화를 알리는 합격 소식은 감정을 잠시 요동치게 하지만, 이 사건의 새로움은 곧 퇴색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변화에 묻어 왔던 감정도 이때 함께 사라진다. 내가 발표했던 예전 논문 자료에 의하면, 사람들이 현재 느끼는 행복감은 최근 약 3개월 동안 있었던 사건들에 의해 좌우된다. 즉, 5월 이전에 있었던 일들은 8월에 느끼는 행복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외적인 강력 사건들이 있지만(가령, 사별), 대부분의 일상적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적응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인간의 감정 시스템은 이처럼 새로움(승진)―감정 반응(야호!)―적응(무덤덤)의 사이클을 무한 반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행복을 안겨주는 '한 방'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모든 기쁨이 시간 앞에서 녹는다면, 선택은 하나다. 아이스크림(기쁨)은 녹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주 먹는 것이다. 기쁨의 빈도가 중요한 이유다.

'금메달을 향하여!'라는 슬로건을 내거는 올림픽은 없다. 이번 리우 올림픽의 슬로건은 '열정을 삶으로(live your passion)'라고 한다. 왠지 행복 슬로건으로 사용해도 어울릴 것 같다. 인생 올림픽에서의 가장 큰 의미는 화려한 시상의 순간을 몇 번 맛보는 것보다 각자의 열정을 향해 꾸준히 더 멀리, 더 높이 뛰어 보는 것에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