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언론인

[초선의원들의 사드 외교 행보]

중국이 우리의 사드 배치 결정에 본격적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 등 우리 내부의 '사드 추진파(派)'에 대해선 청(淸)이 병자호란 때 조선의 주전론자(主戰論者)들을 잡아 죽였듯 마구 매도하고, '사드 반대파'에 대해선 꼬드김-내통-회동-작당-이용-이간질을 하고 있다. 여기다 한·미 동맹에 눈 흘기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현상'까지 겹치면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은 내우(內憂)와 외환(外患)이 겹친 격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국민은 중국의 이런 겁박에 결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참에 숙이면 우리는 21세기의 '핀란드화(化)'로 갈 수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박근혜 외교는 한동안 '중국 비위 맞추기'에 올인했다. 이 겉치레 밀월은 중국이 민낯을 드러내면서 허망하게 끝났다. 훤한 결과였다. 중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하곤 있지만, 본질은 공산당 독재-전체주의-반(反)자유-반(反)인권-반(反)서구 문명이다. 이런 중국이 미·중 기(氣) 싸움, 세(勢) 싸움판에서 북한을 제치고 우리 편을 든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또 "북한 핵·미사일이 긴장을 격화시킨 게 아니라 한·미의 사드가 북·중을 자극해 긴장을 격화시켰다"는 '거꾸로'가 판을 치고 있다. 당(唐)이 고구려 평양성을 포위했을 때도 그런 '거꾸로'가 성문(城門)을 열었다. 원(元)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도 그런 '거꾸로'가 앞장을 섰다.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다는 소리는 낮아졌다. 그 대신 나온 게 '중국=에비'론(論)이다. "사드 배치했다가 에비(중국) 올라" 하는 겁주기다.

일부 논자는 '에비'가 오지 않게 하려면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해야 한다고 설을 푼다. 중급(中級) 국가들이 대국들 사이에서 등거리(等距離) 외교와 균형 외교를 하는 사례는 물론 있다. 그러나 미·일·중·러 등 세계 최강 대국들 사이에 끼인 분단국 한국이 미·중 두 나라와 '똑같이, 동시에' 데이트를 하겠다고 했다가는 양쪽 모두의 불신을 사기 딱 좋다. 이런 곳에선 안보상으로는 미·중 어느 한쪽과 확실하게 편짜기를 해야만 그나마 비빌 언덕이 생길 수 있다. 이게 한반도의 지정학적 제약이다.

대한민국 1세대가 그 편짜기 파트너를 썩 잘 선택한 덕택에 오늘의 한국인 세대가 이만큼 살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한다더니, 구한말 후 100여 년 만에 오늘의 한국은 그때의 대한제국이 아니지만 그때와 비슷한 선택에 또 직면해 있다. 자유주의적 근대문명권(圈)을 대표하는 해양 세력(미국)과 권위주의적 대국굴기(大國�起·강대국의 조건)를 좇는 대륙 세력(중국)이 아시아·태평양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또 한 차례 '세기의 겨룸'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노리는 건 주변 태평양에 대한 통제권, 중국이 주도하는 지역 경제 통합, 중국이 정한 주권 범위 넓히기다. 미국더러 자기들이 수천 년 전에 바다 위에 침 발라놓은 구역 밖으로 나가라는 소리다. 이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는 적극적인 '중국 막아서기' 전략으로 받아치고 있다. 하와이에서 남태평양까지를 가로지르는 '미국의 축(軸·pivot)'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 방침은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이자 지금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포린폴리시 2011년 11월호에 기고한 '미국의 태평양 세기'에 잘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느 편에 설 건가?

우리의 선택 기준은 '1948년의 대한민국' 때와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방콕 소재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가 언급한 '좋은 통치(good governance)'의 여덟 가지 조건―법치·투명성·소통·합의·기회 균등·효율성·신뢰·참여가 그것이다. 이 조건을 고루 갖춘 통치는 대륙의 전체주의-전제(專制)엔 없다. 그런 통치는 북미주, 유럽, 호주, 뉴질랜드, 인도, 동아시아 일부 등 미국외교협회(CFR) 부회장 제임스 린지가 말한 '민주주의 연합체(Concert of democracies)'에만 있다.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이 연합체에 속할 목적으로 태어났다. 그 덕택에 마오쩌둥(毛澤東)이 큰 몫 한 김일성 남침도 견뎌낼 수 있었고, 삶의 질(質)도 높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 친중파가 이 현대사의 정통성을 어째 보려고? 오늘의 싸움은 그래서 '사드냐 아니냐?'를 넘어 '대한민국과 세계 자유민주 문명권의 일체성을 재삼 다짐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세계관의 충돌이다. '흥남 철수' 66년 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