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자는 한눈에 봐도 서로 달랐다. 구본찬은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으며 분위기를 주도했고, 이승윤은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그리고 '허허' 웃는 세 번째 남자 김우진은 푸근한 이웃집 형 혹은 동생 같았다. 하지만 사대(射臺) 위에 함께 선 이들은 마치 한 사람처럼 움직였다. 세트가 끝날 때마다 물병 하나를 놓고 나란히 목을 축였다. 승패를 가를 수도 있는 결정적 화살을 상대가 날릴 때도, 과녁 대신 서로를 응시하며 대화를 나눴다. 결의를 다지는 세 남자의 눈빛에선 믿음을 넘어 확신이 보였다.

7일(한국 시각) 리우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한국은 3세트를 모두 이기며 세트 승점 6대0으로 우승했다. 올림픽 양궁에선 세트당 한 팀 선수 3명이 각각 2발씩 6발을 쏴서 승부를 가리며, 총 4세트제로 치러진다. 한 세트를 이기면 2점, 무승부면 1점, 패하면 0점인데 한국은 3개 세트를 모두 이겨 4세트를 치르지 않고 승리를 확정했다.

주먹을 불끈 쥐는 금메달 세리머니도 똑같다. 체구도 성격도 다른 세 청년 궁사는 7일 오전(한국 시각) 끝난 리우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상대에게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우승을 일궜다. ‘양궁 아이돌’로 불리는 구본찬(23)·김우진(24)·이승윤(21·왼쪽부터)은 주눅 든 기색 하나 없이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 나서 금메달을 따냈다.

[올림픽의 열기가 뜨거운 리우데자네이루는 어디?]

대한민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3인방은 그렇게 한국 남자 양궁의 새 시대를 열었다. 시상대 가장 높은 곳을 오를 때, 세 남자는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 한국 남자 양궁은 2000 시드니, 2004 아테네, 2008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땄다가 2012 런던 때 3위로 밀렸지만 이번에 8년 만에 다시 정상에 복귀했다.

김우진(24·세계 랭킹 1위)과 구본찬(23·2위), 이승윤(21·8위)은 20대 초·중반이다. 과거 올림픽 남자 양궁이 30대 초반부터 10대까지 다양한 연령으로 구성됐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일부에선 모두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이번 대표팀을 두고 '양궁 아이돌'이라 불렀다. 세 선수는 올림픽 무대도 처음이다.

'팀 코리아'의 첫 메달 주인공은 유도에서 나왔다. 정보경(25)은 7일 여자 유도 48㎏급 결승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1호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는 결승에서 파울라 파레토(아르헨티나)에게 절반패 했다. 세계 1위인 남자 유도 60㎏급 김원진(24)은 같은 날 8강전에서 베슬란 무드라노프(러시아)에게 한판패 했다.

수영의 박태환은 남자 자유형 400m 예선에서 3분 45초 63으로 10위에 그쳐, 상위 8명이 진출하는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올림픽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로 구성된 남자 대표팀은 1996 애틀랜타 대회 이후 20년 만이었다. 처음에 '어린 선수들이 큰 무대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각종 월드컵 등 국제대회를 휩쓴 이 선수들에 대해 그런 기우(杞憂)는 불필요했다.

세 사람의 성격은 3인 3색이다. 활달한 구본찬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남녀 대표팀을 통틀어서 단연 분위기 메이커다. 별명이 '까불이'인 그는 이날 우승을 확정 짓고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아름다운 밤이다. 단체전이 끝났으니 이제 동료들은 적(개인전 경쟁자란 의미)"이라는 농담으로 받아쳤다.

막내 이승윤은 점잖은 성격 때문에 큰형으로 오해를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친해지면 말수도 많아지고, 상대를 세심하게 챙겨주는 스타일이다. 평소에는 과묵하지만 활을 잡으면 강한 승부 근성을 발휘해 '싸움닭'으로 불린다.

어찌 보면 양극단인 두 선수 중간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이가 주장 김우진이다. 푸근한 외모처럼 '좋은 게 좋은 것'을 외치는 둥근 성격을 지닌 그는 별명이 '팬더'이다. 김우진은 이날 경기 후 "본찬이나 승윤이가 기복 없이 너무 잘 쏴줘서 순탄하게 금메달을 땄다"며 "그만큼 우리의 준비가 잘됐다"고 말했다. 세 남자는 '소고기 외식'을 할 때 가장 뜨겁게 뭉친다. 몸보신을 위해 태릉선수촌 인근 고깃집을 즐겨 찾는데, 예전엔 실업팀에 먼저 들어간 큰형 김우진이 주로 계산했다면 이젠 세 사람의 신용카드를 한데 모으고 한 장을 뽑아 '복불복'으로 계산한다.

개성 강한 '양궁 아이돌'의 등장을 두고 성공적인 세대 교체란 평가가 나온다. 문형철 양궁 대표팀 총감독은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세 선수의 정신력과 기술력이 모두 뛰어나다"며 "개인이 아닌 '원팀'으로 꾸준히 준비해 온 결과가 결실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