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려거든 여기(절) 와서 밥 먹고 큰 이 살을 베어놓고 가거라."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도 아니고, 살을 베어놓으라니. 조계종 종정을 지낸 고(故) 법전(法傳·1926~2014) 스님이 열일곱 살 때 은사인 백양사 묵담 스님에게 들은 말이다.
사연은 이렇다. "집에 두면 스무 살 넘기기 힘들다"는 말에 아버지는 열네 살 소년 법전을 백양사에 맡기며 "내일 어머니와 함께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 소식 없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법전 행자는 다른 행자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편지 한 통 없는 부모 형제를 그리워하며 "나도 집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이 말이 그만 은사 스님 귀에 들어갔다. 은사는 그를 불러서는 그동안 절에 와서 먹고 자란 만큼 살을 베어놓고 가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한 것. 법전 행자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절에 남았다. 법전 스님은 훗날 행자 시절을 돌아보며 "재주라고는 조금도 피울 줄 몰랐던 순진한 아이였다"고 말했다.
모든 출가자에게 행자 시절은 초심(初心)의 상징이다. 요즘으로 치면 '열정 페이'로 비난받을 정도로 이런저런 허드렛일만 하면서 '도(道)' 근처에도 못 가보는 게 과거 행자 시절이다. 그렇지만 출가자들은 그 시절을 잊지 못한다.
불교 저술가 박원자씨가 스님 48명의 행자 시절 이야기를 추린 '스님의 첫 마음'(뜨란)을 펴냈다. 1996년부터 12년간 월간 '해인'에 연재한 132명 스님의 이야기 '나의 행자 시절' 중에서 뽑고 법전·불필·명성·철산 스님 등의 이야기를 추가해 한 권으로 정리했다.
최근 기자간담회에는 15~16년 전 박씨와 인터뷰한 비구니 일진 스님(운문사 승가대학장)과 금강 스님(미황사 주지)이 '우정 출연'했다. 운문사 주지까지 지낸 일진 스님은 이날 "지금도 행자 시절"이라고 했다. 초심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이야기다. 15년 전 당시 '최연소 출연자'였던 금강 스님은 "출가는 뛰어넘고, 비약해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첫 마음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다시 읽어보니 박 작가님이 스님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비밀을 스스로 털어놓게 하는 비결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