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구약성경 창세기 11장)

경남 남해 다랭이마을은 7국 출연진이 각자 다른 언어를 내뱉는 21세기판 바벨이 됐다. 지난달 초부터 방송을 타기 시작한 '불통(不通) 예능' tvN '바벨250'을 이곳에서 찍기 때문이다. 250은 전 세계 주요 언어 숫자다. 배우 이기우(35), 리우올림픽 개막식 삼바 댄서 마테우스(29·브라질), 미스 베네수엘라 출신 미셸(22), 현금 자산만 1조원이라는 타논 바라야(38·태국), 배우 니콜라 포르티에(34·프랑스), 콘서트 디렉터 천린(27·중국), 미모의 SNS 스타 안젤리나 다닐로바(20·러시아) 등 7국 7명의 출연자가 나온다. 반년에 걸쳐 이메일, SNS 등을 통해 섭외하고 국제 화상 통화 면접을 통해 뽑았다.

출연진끼리 말이 통하지 않다 보니 손짓 발짓이 기본이다. 배우 이기우(앞줄 가운데)가 손가락으로 숫자 5를 나타내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안젤리나, 니콜라, 천린, 마테우스, 미셸, 타논.

지난달 찾은 남해 다랭이마을에서는 촬영이 한창이었다. 이기우와 브라질 출신 마테우스는 마을 농사일을 돕는다며 허수아비를 만드느라 바빴다. 나머지 출연진은 두 팀으로 나뉘어 '바벨어(語)' 만들기와 숙소 꾸미기에 나섰다. 촬영장을 오가는데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이원형 PD의 스마트폰이 끊임없이 울렸다.

"마테우스, 허수아비 제작 시범 본 뒤 '이제 내가 해야 해?'" "안젤리나, 천린의 말에 '나 이해 못 하겠어'라고." 외국인 출연진마다 1명씩 붙어 있는 전담 작가가 상황을 요약해 대화방에 계속 올리고 있었다. 이원형 PD는 "하루 촬영한 내용에 6개 국어 자막을 다는 데만 1주일이 걸린다"며 "제작진도 편집할 때 자막을 보고 재밌는 부분, 감동적인 부분을 부각시킬 수 있다"고 했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고용한 동시통역사만 12명이다.

'바벨250'출연진은 새로운 공용어를 만든다. ‘예스(yes)’대신‘타(ta)’를 같은 의미로 쓴다.

['바벨250'에 출연 중인 배우 이기우는 누구?]

제작진은 정치인도, 책도, 예능 프로그램마저도 소통을 강조하는 시대 흐름을 역행한다. 이곳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각자 모국어를 쓴다"다. 영어도 물론 금지. '미녀들의 수다' 등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이 예능에 등장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의도적으로 말 안 통하는 상황을 만들어둔 것은 '바벨250'이 처음이다. '삼시세끼' '패밀리가 떴다'와 비슷한 시골 생활형 예능 프로그램인데 출연자들끼리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각자 모국어만 쓰면서 공용어를 만드는 게 이들의 과제다. 첫 만남 이후 15시간 만에 이들은 통역 6명을 끼고 서로가 어디서 왔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고 한다.

SBS '닥터스', MBC '몬스터' 등 인기 드라마와 시간대가 겹치는 탓에 시청률은 아직 낮은 편이다. 이원형 PD는 앞으로가 진짜라고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들이 가까워지는 모습과 외국인 출연진의 의외성이 기존 예능과는 차별화된다는 것. 니콜라는 마을 일을 돕기 싫다며 출연진과 힘을 합쳐 파업을 선언한다. 천린은 이들에게 태극권을 가르치고, 캠핑을 좋아한다는 이기우는 각종 아웃도어 장비를 꺼내 다른 출연진을 도와준다. 이기우는 이날 "열흘 넘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말은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도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