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부산에서 한 차량의 광란 질주로 휴가차 해운대를 찾은 40대 엄마와 10대 아들이 길거리에서 황망하게 죽음을 맞았다. 사고 차량은 아무런 제동 없이 급가속 상태로 길거리 차량과 행인을 덮쳐 사상자 17명이 발생했다〈사진〉. 사고를 낸 운전자 김모(53)씨는 순간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뇌전증(간질) 진단을 받고 평소 약을 복용해온 것으로 1일 밝혀졌다. 2015년 11월부터 매일 두 번씩 뇌전증 약을 복용해온 김씨는 하루라도 약을 거르면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김씨는 올해 7월 면허 갱신을 위한 적성검사를 별문제 없이 통과했다. 이 때문에 "대형 운전 사고를 낼 수 있는 각종 질환자에 대한 국내 운전면허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뇌전증뿐 아니라 저혈당 쇼크가 생길 수 있는 당뇨병, 인지 기능 장애 치매 등을 앓는 환자가 큰 제한 없이 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 이상 증세가 있으면 수시적성검사를 받아 운전 능력을 테스트받아야 하지만, 6개월 이상 입원한 경력이 없다면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다.
당뇨병 환자가 400만명에 이르지만 '저혈당 쇼크' 환자에 대해서는 규정조차 없다. 인하대 의대에 따르면 국내 치매 환자의 절반(54%)이 치매 진단을 받고도 1년 동안 운전을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순간에 남들은 물론 자신까지 해치는 대형 교통사고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중증 질환자에 대한 운전면허 관리가 시급한 실정이다.
반면 선진국에선 만성질환자와 고령 운전자가 늘자, 질병 상태에 따라 운전면허 발급과 갱신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저혈당 쇼크가 올 수 있는 인슐린 주사를 맞는 당뇨병 환자는 별도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운전면허를 갱신하고, 영국에서는 치매 진단을 받으면 반드시 운전면허국에 신고를 해 운전 능력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매긴다. 일본은 고령자 운전면허 갱신 시 치매·뇌전증 검사를 통해 부적격으로 판정되면 운전면허를 취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