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한화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본선이 벌어진 7월 28일 여의도 63스퀘어. 날고 긴다는 각국 대표 어린이 240명 틈에서 가장 주목받은 선수는 단연 여섯 살 최연소 출전자 루슬란 타라소프(러시아)였다. 2010년 2월생인 이 꼬마는 고급부에 출전해 24강 진입 직전까지 가는 실력을 선보였다. 유럽과 다른 시간 방식, 여독(旅毒) 등을 감안하면 상당한 선전이었다. 두는 판마다 전투를 펼치는 기풍도 인상적이었다.
공식전에 이어 벌어진 다면기에선 유창혁 9단을 이겼다. "9점 치수(置數)가 좀 과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완승이었다. 유 9단은 국후 "상당한 재주가 보인다. 엄청 빨리 두는데 그 바람에 오히려 내가 말려버렸다"며 루슬란의 기력을 7급으로 사정했다. 시중 기원서 통용되는 '짠' 기준으로 매긴 급수다. 이날 고급부 심판을 맡은 김진훈 4단은 "수읽기와 모양 감각이 탁월하다. 조금 약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유단자로도 통할 수 있는 실력"이라고 칭찬했다.
일본 선수단을 인솔한 고마쓰 다이키(小松大樹) 단장은 휴식 시간에 자신이 들고 온 고난도 사활 문제를 루슬란이 척척 풀어내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둑을 배운 지 불과 16개월 만에 이 수준에 올랐다는 점. 간단한 덧셈 뺄셈 정도나 가능할 나이인데도 올해 열린 유럽 어린이 바둑 콩그레스서 상위권에 입상, 이번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바둑은 12급 수준 엄마에게 배웠는데 지금은 엄마를 거꾸로 5~6점 접어주는 실력이 됐다. "바둑을 처음 접하던 그날부터 식사도 거르고 매달릴 만큼 바로 빠져들더군요." IT 엔지니어인 아버지 로만 타라소프(32)씨는 "루슬란이 올해 초 알렉산더 디너스타인 3단에게 8점으로 도전, 승리하던 날 날아갈 듯 기뻐했다"고 회상했다. 디너스타인은 한국서 입단 후 귀국, 현재 러시아 일인자로 군림 중인 프로 기사다.
하루 일과는 2~3시간 인터넷 사이트 대국 외에 열 살 이하 꼬마 8명이 함께 레슨을 받는 러시아판 영재교육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 정도 학습량은 동양권에선 결코 많은 편이 아니다. 경쟁 분위기, 대적 상대, 참고 서적 등 환경 측면에서 유럽은 동양권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버지 타라소프씨는 "꼭 프로 기사가 되겠다는 외동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한·중·일 3국 중 한 곳에 유학 보내려고 구상 중"이라고 했다.
루슬란은 아직 한국 기사들 이름은 모르지만 기보나 정석 등은 한국형을 좋아한다. 대회 기간에 "약간 산만하다"는 평을 들을 만큼 아직은 천방지축이다. 바둑이 끝나면 승패에 관계없이 활짝 웃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너무도 천진해 각국 참가자들로부터 '루슬란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감자. 한화생명 서지훈 홍보 상무는 "언젠가 저 꼬마가 한화생명배서 우승하고 한국서 프로 기사가 된다면 정말 멋질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