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박성우·신용목 엮음|창비|188쪽|1만원

신경림 시인의 '농무'(1975)를 시작으로 41년의 세월을 견뎌온 창비시선이 400호를 출간했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현재 487호)과 더불어 한국 시집 역사의 오랜 흐름을 보여주는 가계도인 셈이다.

지난 2009년 발간된 시선집 300호 이후의 시집 중에서 비교적 짧은 호흡으로 따라 읽을 수 있는 작품을 골라내 엮었다. 수록된 시 중 김성규 시인의 '절망'은 2행이고, 신미나 시인의 '겨울 산'은 딱 한 줄. '한 뼘 시' 혹은 '손바닥 시'라 부를 만하다. 시집을 엮은 신용목 시인은 "난해해진 시를 읽게 되는 난감함에서 조금이나마 놓여나 독자들이 가능한 한 여유롭게 시와 마주 앉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한 편의 시 옆 페이지에는 짧은 '시인의 말'을 실어 여운을 깊게 했다. 문태준 시인은 자신의 시 '먼 곳'의 옆 공간에 "눈앞의 것에 연연했으나 이제 기다려본다…되울려오는 것을"이라는 글, 김주대 시인은 시 '부녀'에 이웃해 "세계는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나와 동일하게 나이가 들어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모두 시 자체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 있는 문장들이다.

수록 시인 86인은 고은·나희덕·정호승 등 고참급부터 이제니·박소란·신미나 등 신진까지 탄탄한 시력(詩力)을 자랑한다.

함께 시집을 엮은 박성우 시인은 이번 시선집에 대해 "길지 않으나 오래 마음을 흔들어 일렁이게 하는 아름답고 아프고 따스한 시편들"이라며 "시가 그대에게 번지고 그대는 시에게로 번진다"는 시적인 추천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