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다음 주 스케줄 어떻게 돼요?"
마누라 잔소리가 아니다. 열한 살 환희(서울 정목초 5학년)가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춰 일주일 공부 계획을 짜려고 일요일 저녁마다 아빠 이상호(44·대기업 차장)씨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생활하는 직장인이 저녁 약속을 아예 안 잡는 건 불가능하죠. 일주일 최대 두 번만 잡고 다른 날은 '칼퇴'해 숙제 봐주기로 아이와 약속했어요. 5년째 하고 있답니다." 저 멀리 '스칸디 대디'(자녀와 시간 많이 보내는 북유럽 아빠)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사정에 맞춘 '서울 아빠표 교육'이 여기 있다.
"선행학습? 그런 건 없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걸 재미있게 공부하자→재미있으려면 잘 해야 한다→잘 하려면 노력해야 한다→노력하면 재미있어진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줘요."
부자(父子)에겐 3년째 하는 둘만의 '미션 놀이'도 있다. '만원의 행복'. 놀러 갈 목적지를 정하고 환희에게 용돈 1만원을 준다. 환희는 이 돈으로 스스로 지하철로 목적지를 찾아가고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아빠의 미션은 간섭하지 않기. 한걸음 뒤에서 묵묵히 지켜본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역을 둘러보는 '꽃보다 가족', 새로 뜨는 명소에 가보는 '핫트렌드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아빠는 일기 쓰듯 블로그(sanjolee.com)에 아이와의 체험을 소복하게 모아뒀다.
"혹시, 싱글대디?" 이쯤 되면 묻는 이 여럿일 테다. 아니다, 아내 정민경(40·수입문구온라인몰 운영)씨는 환희의 경제 교육 담당이다. 환희에게 '급여통장'을 만들어 주고, 가끔 엄마 회사에 와서 일을 도우면 시간당 300원을 입금해준다. "돈이란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구나 배우는 것 같아요. 직업 체험 테마파크 안 부럽죠?(웃음)"
교육학 전공자도 아닌 직장 생활 18년차 평범한 샐러리맨 상호씨. 유머 감각 빼어난 그는 싱글 적 회사 술자리엔 늘 불려나가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모범 아빠'로 180도 바뀐 이유가 궁금해졌다.
"우리 자랄 땐 좋은 대학(그는 명문 사립대 출신이다)이 행복을 보장해준다고 믿었죠. 이젠 명문대 나와도 취직은 어렵고, '좋은 직장' 개념도 달라졌어요. 책상머리 교육보다 세상살이 교육이 아이에게 필요하다 싶었어요. 세월호 사건을 보며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도 하게 됐고요."
칼릴 지브란이 말했던가. '어른은 활, 아이는 화살'이라고. 그 사이 온갖 사교육 동원해 활 시위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온 '엄마표 교육'에 아빠들이 반기를 든 걸까. 아이라는 화살이 거친 세상 뚫고 갈 수 있도록 든든히 받쳐주는 아빠표 세상 교육, '대듀케이션(DADucation·dad(아빠)와 education(교육)을 합친 말)'이 서서히 기지개 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