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위작 논란' 이우환 화가는 누구?]

비겔란 조각공원은 압도적이었다. 소낙비 지나간 7월 오후, 노르웨이의 투명한 하늘 아래 야외에 임립(林立)한 조각 군상(群像) 212점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침묵으로 절규하고 있었다. 세계적 조각가 비겔란(Gustav Vigeland·1869 ~1943)이 평생에 걸쳐 만들어 오슬로시(市)에 기증한 작품들이다. 남성과 여성, 아이들이 웃고 울며 사랑하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했다. 공원 한가운데 17m 높이로 선 모노리스(monolith)는 몸부림치는 121명의 등신대 인물상을 화강암 기둥 하나에 새긴 기념비적 대작이었다. 청명한 하늘, 청량한 바람 속 모노리스는 아름다움을 넘어 섬광 같은 숭고(崇高·the sublime)의 충격을 선사했다. 한반도와 세계의 소란스러운 세상사가 잠시 초극(超克)되는 순간이었다.

이우환도 세계적 거장이다. 물체와 공간, 물체와 인간 같은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찬사를 받은 모노하(物派·물파)의 대표 작가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이우환 영혼의 창조전'에 매혹당해 눈물 흘리던 뉴욕 시민을 다룬 현지 언론 보도가 생생하다. 시코쿠의 거의 버려진 섬 나오시마가 이우환 미술관을 비롯한 예술 프로젝트로 되살아나 한 해 수십만명이 찾는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했다. 백남준이 타계한 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한국 예술가는 이우환이다. 그런 이우환이 위작 시비에 휘말렸다.

미술계의 가짜 소동은 새삼스럽지 않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 감정한 작품 중 30%가량이 위작으로 판정될 정도다. 국민 화가 이중섭과 박수근은 상당수 위작이 유통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천경자 화백은 평단과 미술관이 진품으로 판정한 '미인도'가 가짜라고 항의하며 붓을 꺾었다. 가수 조영남 대작(代作) 사건은 가짜 소동의 한 획을 그었다. 조씨는 작품 대부분을 직접 그리지 않았음을 시인한 후 사기범 취급 받는 신세다.

이우환은 완전히 다르다. 그는 경찰이 가짜라고 판정한 작품 13점 모두 진짜라고 주장한다. 위조 작가, 자금 공급책, 유통책이 잡히고 이들이 위작 과정을 재현해 보인 데다 전문가들의 안목 감정과 국과수의 과학 감정이 위작으로 판정한 작품을 작가 본인이 진품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세계 예술사에서 보기 드문 진풍경이다. 이 화백은 자신의 색채, 리듬, 에너지는 그 누구도 베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상당한 무게가 실리는 발언이다. 작가·평론가·화랑·대학으로 구성된 사회 제도로서 예술계가 특정 작품을 예술로 공인해야 예술품으로 성립한다는 예술 제도론 관점에서 이우환은 세계 예술계가 인정한 거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감정 결과는 문제의 13점이 가짜임을 가리킨다.

이 충격적 사태는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지' 묻게 한다. 현대 예술은 예술이 고급한 정신 활동의 산물이라는 생각이나 아름다움의 표현이라는 상식을 케케묵은 것으로 거부한다. 예술과 비(非)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려 예술가의 고유한 아우라를 파괴한다. 모든 것이 예술이라 자처할 수 있게 되었고 독창적 천재로서 예술가의 초상도 붕괴했다. 그 결과 예술이 민주화된 반면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흐려지는 무정부 상태가 초래된다. 특히 미술 영역이 그렇다. 그림을 대작시킨 조영남에게 보통 사람들이 격분한 데 비해 전문가들이 관대했던 배경이다.

그러나 예술의 표준을 해체하면서 현대 예술은 길을 잃었다. 만약 현대 예술의 논리가 옳다면 예술 전문가의 예술 이해가 일반인보다 낫다는 이론적 근거 자체가 사라진다. 예술의 표준과 중심이 없다면 예술 전문가가 일반인보다 우대받을 본질적 이유도 없다. 현대 미술이 막다른 골목에서 좌충우돌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대작이나 베끼기 같은 미술계 관행이 문학이나 음악 같은 다른 예술 영역에서는 철저히 금기시되는 이유를 현대 미술은 성찰해야 마땅하다.

예술의 미명 아래 진짜와 가짜의 사실적 차이를 무시하는 건 예술가의 오만에 불과하다. 어떤 작품이 가짜라면 그것을 만든 작가의 삶도 가짜라는 보통 사람의 의심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이것이 이우환과 현대 미술 전체에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다. 진정성으로 충만한 비겔란 공원의 조각들은 진짜였으며 모노리스는 아름답고도 숭고했다. 비겔란 공원의 진정성과 숭고미는 현대 예술에 난무하는 현학적 소란을 일거에 잠재울 만큼 강력했다. 삶의 진실을 함께 나눈 비겔란 덕분이다. 예술이 진짜여야 예술가의 삶도 진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