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칠십을 앞두고 시인으로 등단했는데, 계속 시를 써야 시인이고, 앞으로 얼마나 더 쓸지는 모르겠지만 시집 세 권은 내는 게 예의가 아닌가 해서 또 내게 됐습니다. 못난 시집이지만, 세 권 냈으니 게으르지는 않았다며 자족합니다."
한상완(75) 전 연세대 부총장이 신작 시집 '불꽃'(마로니에북스)을 냈다. 문헌정보학자로 활동해 온 그는 2007년 정년 퇴임한 뒤 초대(初代) 도서관정보정책위원장을 지내고 나서 2009년 예순여덟 살에 시 전문지 '심상'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늦깎이 시인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해 그동안 시집 '편지'와 '그대는 나의 별'을 낸 데 이어 최근 세 번째 시집을 펴냈다.
충남 당진의 우강(牛江)에서 태어난 한상완 시인의 호는 우강(友江)이다.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교육부의 기관지 '교육주보'가 주최한 전국 문학 콩쿠르에서 잇달아 장원을 차지한 문학 소년이었다. 학자가 돼 시작(詩作)을 접어뒀지만, 강단에서 물러난 뒤 시에 전념하는 재미가 남다르다고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집을 낼 땐 시낭송회 겸 음악회, 시화전도 열면서 스승과 친구, 제자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번에 새 시집을 내고서 그렇게 큰 모임을 갖는 대신 제 마음에 있는 분들께 시집을 한 권씩 드리는 기쁨을 누립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전 예술원회장은 시집 '불꽃' 해설을 통해 "나날의 삶에서 조그만 행복을 찾아내어 그것을 진솔하게 말로 다듬어 고운 천으로 엮어낸 것이 우강(友江)의 시라고 할 수 있다"며 "우강의 시법(詩法)은 행복과 감사의 시법"이라고 풀이했다. 시인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우연히 고추잠자리를 발견하곤 "온겨?"란 사투리로 정답게 부르며 사소한 경이에 열린 마음으로 행복의 순간을 표현했고, "하버지 아야야"란 외손녀의 유아어를 시에 활용해 일상의 행복을 노래했다.
한상완 시인은 "이 각박한 세상에서 제 시가 물 한 모금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밤늦게 시상(詩想)을 다듬는 것이 여년(餘年)에 어울리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년(老年) 대신 '여년'이란 말을 애용한다. 그러나 그의 짧은 시 '불꽃'에선 나이를 모르는 열정이 타오른다. '너,/ 내 가슴/ 온통 차지하고/ 심연부터/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꽃.' 그 불꽃은 피의 생명력을 뜻하기도 하고 관능의 붉은 꽃이기도 하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예술의 불꽃놀이이기도 하다.
한 시인은 시 '네 시'에서 시심(詩心)이 찾아오는 오후 네 시와 새벽 네 시를 노래했다. '하루해가/ 설핏 저물어가고/ 클래식 음악 방송 듣노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소리'가 그의 영혼을 적시고, 밤새 시를 쓴 뒤 '반짝이는 새벽 별/ 우러르며/ 미명의 시린 대기/ 한 가슴 들이쉬며/ 다시/ 잠자리 되돌아가는/ 새벽 네 시/ 구원의 시간'을 맞이한다는 것. 한 시인은 "시를 쓰면서 아름답게 사는 과정을 즐깁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