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브렉시트가 반(反)세계화가 아니라 서민의 이유 있는 반란이란 해석이 나왔다. 여론 주도층인 정치 엘리트에게 가려졌던 영국 사회 속살이 이번 국민투표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버밍엄대학 마틴 파월 교수는 브렉시트를 14세기 농민 반란의 현대적 재연이라 했다. 당시 흑사병과 가혹한 세금으로 피폐해진 지방 농민들은 봉기해 런던을 점령하고 캔터베리 대주교와 재무장관을 살해했다. 와트 타일러와 함께 반란을 이끌었던 수도자 존 볼은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길쌈을 할 때 누가 귀족이었는가?"라고 외치며 농노제 폐지를 주장했다.
오늘날 농노제는 없지만, 부의 양극화는 역사를 되풀이하게 한다. 민주화 시대 성난 민심은 반란을 일으키는 대신 투표를 통해 정부를 심판한다. 민심은 천심인가? 지금 표층의 파도는 반세계화의 역류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것이 더 높은 곳에서 부는 세계화의 바람을 막을 수는 없다. 영화 '관상'의 대사처럼, 파도가 아닌 바람을 봐야 한다.
영화 '설국열차'는 마르크스 말대로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말에서 이 모든 혼란은 열차의 맨 앞칸과 맨 뒤칸의 두 지도자가 짠 음모로 일어난 것임이 밝혀진다. 태풍이 대기를 순환시키고 지구 생태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듯, 혁명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다시 돌게 한다. 혁명을 뜻하는 레볼루션(revolution)의 원래 의미는 '천체 회전'이었다. '설국열차'는 두 아이가 열차 밖으로 나가는 역사의 종말로 끝난다. 하지만 새로운 아담과 이브가 과연 똑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설국열차가 계급투쟁을 동력으로 영원한 궤도를 끝없이 도는 것처럼, 인류 역사도 브렉시트와 같은 파도를 타고 반복하는가? 아니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런 식으로 반복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일까? 역사의 바퀴가 헛돌거나 같은 궤도를 맴돌지 않으려면 바람을 타고 나아갈 방향을 아는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
선거는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게 한다. 포퓰리즘은 파도만 보게 할 뿐, 바람의 흐름을 못 읽게 한다. 민주주의 딜레마다. 그래서 브렉시트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년 대선을 앞둔 우리 문제이기도 하다. 파도가 아니라 바람을 볼 줄 아는 지도자에게 대한민국 열차의 조종간을 맡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