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보〉(55~77)=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일본에 '바둑 집안'이 월등히 많은 것은 가업(家業) 또는 장인(匠人)정신이 투철한 일본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우동에서 찹쌀떡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씩 한우물만 파는 풍토가 바둑 세계까지 이어져 온 것. 하네 나오키(羽根直樹·40)의 부친 하네 야스마사(羽根泰正·72)는 아들보다는 못하지만 역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기사다. 흥미로운 건 불꽃처럼 화끈한 기풍의 부친과 달리 나오키는 잔잔한 호수처럼 담백한 바둑을 구사한다는 점.

55로 이었을 때 56은 정수였다. 참고도 1이 급해 보이지만 흑에게 4의 급소를 얻어맞으면 10까지 곤마로 쫓기게 된다. 57, 59로 적의 미생마를 몰며 사방을 건설해 흑이 한창 손바람을 내는 모습. 이와 대조적으로 백은 어딜 둘러봐도 모양 정리된 곳 없이 불안정하다.

60으론 63의 곳을 단수쳐 정비하는 쪽이 좋았다. 그때 흑이 71에 두어 중앙 백을 봉쇄하면 백 '가'로 살면 된다. 61과 62 교환은 '나'의 단점을 예방한 것. 63을 선수(先手)한 뒤 70까지 몰아치니 하중앙 역시 흑쪽이 더 힘차 보인다. 71로 봉쇄, 삶을 강요하자 백은 72~76으로 '맛'부터 남기겠다고 나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