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킬링필드 대학살의 장본인들은 35년 만인 2014년 종신형을 받았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양민을 학살한 정치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도 21년 만인 지난 3월 징역 40년이라는 엄정한 심판을 받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sooner or later) 정의를 실현하는 것, 그게 국제법이다."

4일 서울 서초동 국립외교원에서 만난 로리 담로시(62)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는 "강대국이 아닐수록 국가 간 갈등을 조정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상설중재재판소(PCA) 같은 국제 사법기관들의 활동이 현실과 괴리됐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담로시 교수는 뉴욕 변호사, 국무부 법률자문관, PCA 미국그룹 회원, 미국국제법학회장을 지낸 미국의 대표적인 국제법 전문가다. 이날부터 15일까지 국립외교원이 18국의 젊은 외교관 및 연구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서울국제법아카데미 강사로 초빙돼 내한했다.

로리 담로시 교수는 테러와 인명 살상을 자행하고 있는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해서도 “전범(戰犯)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국제법에 따라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키워드 정보] 국제형사재판소(ICC)란?]

[[키워드 정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란?]

담로시 교수는 "국제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인 동시에 분쟁 해결의 디딤돌을 놓는 과정"이라며 "필리핀과 중국 간 남중국해 영유권(領有權) 분쟁에 관한 PCA의 결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라"고 했다. 필리핀은 2013년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PCA에 제소했고, 오는 12일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그녀는 "이번 판결은 남중국해에서 물에 잠겨 있는 암초의 법적 지위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국제법적 해석의 토대가 된다"며 "앞으로 국제 영토 분쟁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중요한 것은 준수 여부다. 어느 나라든 결정에 불복한다면 국제사회는 국제질서에 대한 위반으로 간주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영토 분쟁은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지난 2월 중국 군용기가 사전 통보 없이 대한해협 건너 동해까지 넘어와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했다. 우리의 영토 분쟁 상대국이 일본을 넘어 중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국 주도로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기존 북·중 국경선 승계 문제, 간도 영유권 문제 등이 표면화되면 국경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담로시 교수는 "한국에서도 향후 영토 분쟁이 격화할 경우 국제재판소가 하나의 해결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엔(UN)과 국내외 인권단체는 김정은 등 북한 지도부에게 인권 탄압의 책임을 물어 ICC에 회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담로시 교수는 "마땅한 체포·영장 집행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아 현 단계에선 실현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증거를 수집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해나가면 지금껏 그래왔듯 조만간 정의는 실현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녀는 "동북아에서 무력 충돌과 영토 분쟁이 치열해질수록 국제사법정의를 실현하는 데 한국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한국은 대표적인 중견국(middle power)이면서 강대국과 약소국,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동양과 서양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