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준, 박하민.

바둑 동네에서 신인왕전은 일종의 '세자 책봉식' 같은 행사다. 이 징검다리를 거친 유망주들의 시야엔 정상권 풍경이 훌쩍 다가오지만, 실족하면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가 많다. 성장기 신인 기전 우승이란 그만큼 소중한 '감투'다. 올해 제4기 메지온배 오픈신인왕전 패권을 가릴 결승 3번기가 11일 시작된다. 마지막까지 남은 2명의 후보는 신민준(17) 3단과 박하민(18) 초단.

그런데 이 둘의 관계가 묘하다. 신민준이 계속 한발 앞서 달려온 모양새다. 출발부터 그랬다. 2012년 제1회 영재 입단대회 때 유력한 입단 후보 중 하나였던 박하민은 최종 4강 토너먼트서 탈락, 신진서 신민준의 입단을 씁쓸히 지켜봐야만 했다. 훗날 연구생 내신성적으로 프로에 합류했지만 '양신(兩申)'에 비해 2년 반이나 늦었다. 프로 진출 후에도 아직 별반 내세울 게 없는 자신과 달리 신민준은 성인 무대인 천원전 준우승(2014년) 등 엘리트 코스를 착착 밟아왔다.

게다가 신민준은 현재 바둑리그에서, 박하민은 2군 격인 퓨처스리그에서 뛰고 있다. 또 신민준은 국가대표, 박하민은 19세 이하 유망주들의 훈련장인 '육성군' 소속이다. 랭킹도 신민준이 26위, 박하민이 89위로 제법 차이가 난다. 시쳇말로 신민준이 '금수저'라면 박하민은 '은수저'쯤 될까. 역대 신인왕 결승전 카드치곤 흔치 않은 '미스매치(부조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 몇 가지 데이터에서 차이가 난다지만 불과 3~4년 사이의 자료들인데다, 신예들의 대결은 뚜껑을 열기 전엔 알 수 없기 때문. 이번 대회 준결승만 해도 박하민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한국 23위 김명훈(19)을 누르며 결승에 올랐다. 두 소년 모두를 맡아 지도 중인 국가대표팀 최명훈 코치는 이번 결승을 이렇게 전망한다. "객관적으론 민준이가 53대 47쯤으로 앞서 있죠. 하지만 그 정도론 결코 우승을 장담할 수 없어요."

신민준은 전투적인 기풍이다. 웅크리고 있다가 상대가 빈틈을 보일 때 낚아채는 힘이 탁월하다. 본인도 "하민이 형과는 50대 50의 승부지만 전투바둑으로 흐른다면 자신 있다"고 말한다. 박하민은 "민준이의 강한 수읽기 능력은 인정하지만 가끔 행마가 느리다는 느낌을 준다. 그때를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천기(?)를 흘린다. 지금까지 둘은 공식전서 단 한 차례 만나 신민준이 이겼다.

둘은 꽤 친한 사이다. 대표팀 연구실을 벗어나면 친형제처럼 어울린다. 그러나 이번 신인왕전 앞에선 둘 다 필사적이다. 결승을 앞둔 대국자들로부터 "우승이 간절하다"는 솔직한 속내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다. 신예 대회 3회 포함 준우승만 4회에 그쳐온 신민준, 본격 부화(孵化)의 전기가 절실한 박하민 모두 상대 기보를 구해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고작 800만원의 우승 상금이 탐나서 그렇겠는가.